[이규태 코너] 都羅山
끊어진 임진강 철교의 남쪽 수풀 속에 철마 한 마리가 강 건너 도라산을
바라보고 쓰러져 있었다. 노산 이은상은 이 철마를 보고 이렇게 읊었다.
「철마야 너 왜 입을 다물고 /잡초 속에 쓰러져 누웠느냐 /벌떡 일어나
우렁차게 울어 /이 적막한 하늘을 뒤흔들어라 /지금 곧 북으로 북으로
/냅다 한번 달리자꾸나.」 그 철마가 52년 만에 벌떡 일어나 민족의
염원을 싣고 우렁차게 울긴 했는데 겨우 철교를 건너 맞바라보이는
도라산 기슭에 멎고야 말았다.
임진강 건너기가 얼마나 힘겨운가를 도라산은 알고 있다. 임진년
왜란으로 졸지에 피란길 떠났던 선조께서 좌우의 신하들이 도망친 후
굶주린 채 폭우 쏟아지는 밤 이 임진강을 건너야 했다. 내의원 의원 한
분이 상투 속에 숨겨온 비상양식인 엿으로 허기를 달랜 임금은, 배 하나
주워다 탄 것이 비바람에 방황하여 표류하는데 강언덕에 있는 정자에
불을 질러 뱃길을 밝히고야 도강했던 사실을 도라산은 지켜 보았다.
병자년의 호란으로 심양에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세자 따라 조선에 온
명나라 궁녀가 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귀환령이 내렸다. 오랑캐
궁전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이 궁녀는 강을 건너며 몇 차례 투신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강을 건너자 신었던 꽃신을 나란히 벗어놓고
강물에 투신했다.이 꽃신으로 도라산 기슭에 무덤을 만들었고 뜻있는
분들은 사신길 가면서 이 꽃신 무덤에 술 한잔 따라 바치고 시를 읊곤
했던 것이다. 어딘가 수풀 속에 남아 있을 이 꽃신 무덤을 오로지
도라산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도라산은 한양과 평양을 잇는 봉수대가 있던 산으로 하필이면 잘린 분단
국토의 허리목에 자리하여 길이 있으면서 가지 못하는 분단을 상징하여
반 세기를 지켜내린 산이다. 이 도라산이 교류의 상징 장소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분단 최북단인 도라산을 방문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도라산이 경의선 단절의
최북단이고 보면 철도 연결로 남북을 한 꿰미에 꿰는 데 전폭적인 지지
표명이요, 바로 한국은 남북대화, 미국은 북·미대화를 촉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도라산 밑자락에 협상의 자리를 깔러 부시가 멍석을 메고
그 곳에 가는 것일 게다. 그리고 도라산 봉수대에 봉화가 타오르는 것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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