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돼지의 오장육부
남태평양에서 젖이 분 어머니가 방목하는 새끼돼지를 끌어안고 젖을
먹이는 광경이 보도된 적이 있다. 동물학자 슈테그만은 독일의
북부지방에서도 돼지에게 사람 젖을 먹여 기르는 사례를 보고했다. 중세
유럽의 귀족사회에는 인유만을 먹여 기른 돼지고기 요리가 있었다.
집안에서 기르는 짐승이 적지 않은데, 하필이면 돼지만 사람 젖을 먹고
또 먹인 것은 사람과 돼지의 내장 조직 구조에 유사성이나 친화력이 강한
때문일 것이다.
왜 돼지머리를 차려놓고 고사를 지내는가도 사람과 돼지 사이의
생체구조에 반발하는 거부구조가 극소화돼 있기 때문이라는 종교학자의
학설도 있다. 돼지 뒷다리에는 마치 북두칠성(北斗七星)처럼 흑점이 일곱
개 나있다고 우리 선조들은 믿고 있었다. 정말로 나 있는지의 여부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나 있는 것으로 믿었던 것만은 문헌상 확실하다.
돼지는 본래 하늘에서 살고 있었는데, 얼굴이 검다하여 용왕에게 미움을
받고 추방을 당해 지상에서 살게 되었으며, 하늘에서 살아 천명과
유관하다는 증명으로 이 칠성점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인의 생사와 화복을 관장하는 칠성(七星)사상과 야합하여
제사 지낼 때 신명과 매개하는 희생동물로 선택받았다는 것이다. 돼지가
신성동물로 인생뿐 아니라 이 나라의 화복을 점치는 동물로 우러렀음은
「삼국사기」에 자주 나온다. 고구려 유리왕 19년, 꼭 기원 1년에
나라에서 기른 제사용 돼지인 교시(郊豕)가 도망치는 바람에 이를 지키던
관리가 다시 도망치지 못하게 뒷다리의 살을 베어버렸다. 이에
신성모독이라 하여 이 관리 두 사람을 동굴에 던져 죽였다. 이 교시가
점지해준 땅으로 도읍을 옮기기도 하고, 또 이 교시가 맺어준 여인과
내통하여 임금을 낳기도 했다.
민간 약방(藥方)에 주둥이 긴 돼지의 목살은 주독 푸는 데 좋고, 콩팥
사이의 기름진 살은 폐병에 특효약이며, 특히 화전갈이에서 나무뿌리만
먹고 자란 돼지는 최상급의 뇌물로 그 살은 폭비(暴肥)라하여 비대증을
막는 다이어트 식품이요, 간과 간 사이에 있는 지라는 내장의 만병
통치약으로 선호했다. 그 많은 짐승 가운데 돼지가 가장 거부 능력이
없는 장기이식용 대체동물로 복제됐음이며, 그것이 한국학자들의
도움으로 처음 이루어졌음은 이 돼지 친화문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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