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유길준 박물관
마녀재판으로 유명하고 「주홍글씨」의 작가 호손이 살았던 미국 보스턴
인근 세일럼에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생 유길준(兪吉濬)이 입었던 한복이
전시돼 있다 해서 찾아간 것은 20여년 전 일이다. 피바디 박물관의 한쪽에
사모관대를 입힌 마네킹의 손가락 사이에 최경석이란 이름이 쓰인 조선
종이봉투가 끼여있었다. 최경석은 한·미조약 후 특명대사 민영익을 따라
유길준과 더불어 미국에 갔던 사절단원으로 주로 농사견문을 하고 돌아갈
때 개량 종자를 많이 얻어갔던 분이다. 이 박물관에서 유학했던 유길준이
그의 유물을 모조리 기증한 것으로 유물수집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나
전시돼 있던 사모관대는 유길준의 것이 아니라 그후 박물관측에서 수집한
것으로 총 2500점의 한국문물 가운데 하나라 했다. 들고 있는 봉투는
유길준이 기증한 유품 가운데 하나이고 김옥균 서광범 탁정식의 명함도
나왔는데 피바디 박물관의 관장이던 모스 박사가 일본에서 직접 만나
받은 것들이라 했다.
유길준의 후견인인 모스 박사는 일본에 머물고 있었는데 일본에 피난와
있던 윤웅렬 윤치호 부자가 수집에 참여했고 구한국정부 외교고문이던
독일인 묄렌도르프도 모스의 부탁으로 접시 숟가락 등 생활도구 250점을
수집해 보냈다. 민영익 일행을 안내했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쓴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도 곱돌냄비 등을 수집해 보내는 등 많은 외국인이
수집에 참여했었다.
피바디 박물관의 지하에 묻힌 채 쌓여있던 이 유물 2500점 가운데
500점을 추려 1994년에서 1995년에 걸쳐 60일 동안 서울에서 전시회를
가졌었다. 총 15만명의 인파가 구경한 성황이었고 입장수입과 성금 도합
2억3000여만원을 피바디 한국박물관 건립기금으로 기증했었다. 유길준
박물관으로 명명하기로 한 이 박물관이 기공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며
준공은 2003년 미국 현충일로 정했다 한다.
이 세일럼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유길준이 유학했던 더머
아카데미가 있다. 교실과 교무실이 한데 달린 당시 건물이 보존돼 있으며
유길준의 아들이요 문교부장관을 역임한 유억겸이 이 학교에
들러서 그의 아버지가 썼던 책상과 낙서를 찾아볼 수 있었다 했는데
그것을 찾아 전시해 놓으면 유길준 박물관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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