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占집 성업

bindol 2022. 11. 29. 16:24

[이규태 코너] 占집 성업

조선일보
입력 2002.01.06 19:58
 
 
 
 


점시장이 사상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신세대
취향에 맞게 인터넷에도 진출, 한 달에 복채를 3억2000만원이나 버는
사이버 점집도 있다 한다. 과거에 일곱 번 낙방한 노(老)서생이 실력이나
노력이 자기만도 못한 사람들이 급제한 데 불만을 품고 옥황상제에게
상소를 했다. 이에 기량의 신과 운명의 신을 불러놓고 술시합을 시켰다.
기량의 신은 석 잔에 나가떨어지는데 운명의 신은 일곱 잔까지 마셨다.
「보았는가. 인생사란 노력해서 쌓은 기량은 열 칸에 세 칸을 차지하고
나머지 일곱 칸을 운이 지배한다는 것을ㅡ」했다. 이스라엘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하는 일마다 안되는 유대인 하나가 고명한 랍비(성직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에 랍비는 「뉴욕타임스 연감 1970년판
930페이지를 펼쳐보면 해답이 있을 것이다」했다. 돌아와 펼쳐보니 역대
유명 야구 타자들의 타율이 나열돼 있을 뿐이다. 최고의 타율이
3할6푼7리에 불과했다. 곧 아무리 천부적 소질을 갖고 노력을 해도 3타석
1안타가 고작이요 나머지 7할은 운이 지배한다는 유대판
기삼운칠(技三運七)인것이다.

정초면 어느 때건 운수가 판치는데 공전의 취업난, 입학난이 겹치고
주가마저 가세, 그 불확실성으로 나약해진 마음을 유혹하고 있는
운수점이다. 활자세대와는 달리 젊은 영상세대는 상대적으로 점술에
빠지기 쉽다는 것도 사이버 점의 성업을 부추겼을 것이다.

명종 때 상진대감은 명점술가 홍계관으로부터 죽을 날을
점지받았는데 그 날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15년이나 더 살았다. 이에
홍계관은 언젠가 어디선가 죽을 목숨을 살려준 음덕으로 수명이
연장된 것이라 했다. 이에 상진대감은 운수나 사주란 하늘이 정해준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 했다.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와
사주가 하루 한시도 다르지 않은 80 촌부가 찾아왔다. 강원도에 들어가
주인 없는 묵정밭 가꾸며 과부 소박데기 노처녀 노소 가리지 않고 혼자
지낼 수 없는 사람 데려다가 더불어 살면서 그 사이에 수백 손을 보았는데
늙어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칙사대접을 받고 여생을 산다 했다. 운수는
이처럼 음덕을 쌓아 개척하는 것이라는 전통 운수관을 되살렸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