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배 높아진 건 알아차리겠네(只覺釣船高·지각조선고)
밤새도록 산속에 비가 내리는데(一夜山中雨·일야산중우)/ 지붕 위에 엮어놓은 띠가 바람에 날리네.(風吹屋上茅·풍취옥상모)/ 계곡물 불어난 건 알지 못하여도(不知溪水長·부지계수장)/ 낚싯배 높아진 건 알아차리겠네.(只覺釣船高·지각조선고)
위 시는 중국에서 귀화한 설손(偰遜·?~1360)의 시 ‘山中雨’(산중우·산속에 내리는 비)로, 그의 저서인 ‘근사재일고(近思齋逸藁)’에 실려 있다.
산속의 띠집에 밤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볼품없는 초가지붕마저 날려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조마조마하며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긴장한 채로 방문을 뻐거덕 연다. 저 앞 숲에서는 여전히 빗방울이 두둑거리는 것 같다. 계곡도 그대로인 듯하다. 다시 가만 보니 변화가 있다. 계곡 가에 매어둔 고깃배가 어제보다 한결 높아져 물살에 흔들거린다. 밤새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난 것이다.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지만, 시인의 눈을 속일 수 없다.
설손, 그는 위구르인으로 난리를 피해 고려로 귀화한 시인이다. 그는 고조부 이래 원나라에서 벼슬한 집안 출신이다. 설손은 원나라 순제(順帝) 때 진사에 합격해 여러 벼슬을 거쳤다. 황태자에게 경전을 가르칠 정도로 월등했다. 부친상을 당해 대령(大寧)에서 지냈다. 1358년(공민왕 7) 홍건적이 대령을 정복하자 난을 피해 고려로 왔다. 설손이 황태자를 가르칠 때, 왕이 되기 전 원나라에 가 있던 공민왕과 친교가 있었다. 이에 설손은 고려에 와 공민왕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고려에 와서도 뛰어난 시인으로 알려졌다.
어제까지 목압서사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이곳은 지리산 주능선과 연결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봉우리마다 운무가 반쯤 걸쳐 있어 한 폭 수묵화보다 더 장엄하다. 화개동천 계곡물도 불어 콸콸 흐른다. 홍가신(洪可臣·1541~1615)의 오언절구 ‘江村暮景’(강촌모경)이 생각난다. “멀리 강가 나무 우거져 있고(江樹遠芊芊·강수원천천)/ 강마을 저물녘에 안개 피어오르네.(江村生暮煙·강촌생모연)/ 어부가 혼자 고기잡이 마치고 나니(漁人獨罷釣·어인독파조)/ 빈 배에 밝은 달만 가득하네.(明月滿空船·명월만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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