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를 추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 何必富貴乎?·하필부귀호?
만약 불현듯이 (관직을 그만두고) 맑고 고아해지고 싶어 관대(官帶)를 풀고 머리비녀를 뽑으실 수 있다면 저는 여기에 산장을 준비할 수 있으리이다. 문득 한 번 팔짱을 끼고 숲에 들어가 수건을 걸고 나뭇가지를 드리우고 술병을 든 채 산봉우리에 올라서는 평평한 곳에 자리를 깔지요. 그리고 소박한 뜻을 이야기하고, 옛정에 관해 말하며, 단법(丹法)에 대해 문의하고, 현서(玄書)에 관해 논한다면 이 또한 즐거우리니 구태여 부귀를 추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若能飜然淸尙, 解佩損簮, 則吾於玆, 山莊可辦; 一得把臂入林, 掛巾垂枝, 携酒登獻, 舒席平山, 道素志, 論舊款, 訪丹法, 語玄書, 斯亦樂矣, 何必富貴乎?(약능번연청상, 해패손잠, 즉오어자, 산장가판; 일득파비입림, 괘건수지, 휴주등헌, 서석평산, 도소지, 논구관, 방단법, 어현서, 사역락의, 하필부귀호?)
‘북제서(北齊書)’ 文宛傳(문완전)에 수록된 글이다. 북제의 문신 조홍훈(祖鴻勛)이 관직을 떠나 귀향한 뒤 벼슬살이하고 있는 양휴(陽休)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로 양휴의 사직을 권하는 내용이다. 이 편지는 변려체(騈儷體) 문장으로 되어 있다.
‘북제서’는 중국 당나라 때 이백약(李百藥·565~648)이 황제의 명에 따라 지은 기전체 역사서로, 이십오사(二十五史) 중 하나이다. 50권으로 이뤄졌고 636년(정관 10년) 완성된 동위(東魏·534∼550)·북제(北齊·550∼577) 역사를 기록한 정사이다. 북제는 동위의 실권자 고양(高洋)이 세운 중국 왕조로, 남제와 구별하여 북제라고 한다. 도읍은 업(鄴)으로, 현재 중국 하북성 임창현(臨彰縣) 남서쪽 20㎞ 지점이다.
지금의 베이징에서 태어난 조홍훈은 북제의 문신으로, ‘북제서’에 ‘조홍훈전(祖鴻勛傳)’이 있다. ‘丹法’·‘玄書’ 등의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조홍훈은 도교에 심취한 인물이다.
변려체는 중국 육조와 당나라 때 성행한 한문 문체이다. 문장 전편이 대구로 구성되며, 4자로 된 구와 6자로 된 구를 배열하기에 사륙문(四六文)이라고도 한다. 어제 아침 일찍 목압서사에 차를 마시러 온 지인과 ‘도사(道士)’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오늘 책을 읽다 위 문장을 보고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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