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항녕의 조선 23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농지와 산림은 만인의 자산, 민생 바탕 다졌다[출처: 중앙일보]

임금의 땅, 백성의 땅 풍속화가 김득신(1754~1822)의 ‘천렵도’(川獵圖). 어른과 아이가 함께 물고기를 놓고 젓가락질을 하고 있다. 고된 일상을 잠시 잊고 여유를 즐기는 듯하다. 이렇듯 강이나 산은 누구나 이용하는 곳이었다. [사진 간송미술관] 1793년, 정조(正祖)는 『일득록』에서 말했다. “송 선정(宋先正·송시열)이 현종 때 흉년을 만나 조정의 비용을 줄이자고 했다가 비방을 받고 조정에 있기 불안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선정이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내가 공물(貢物)까지 혁파하지 못한 것이 한이다’ 했다고 한다.” “산천은 백성과 공유”가 사상 기조 갯벌·어장·뒷산·숲 등 백성에 개방 왕실·토호의 사유화 확대에 저항 이이·송시열 등 세제 개혁 주장 송시열 공물이란 백성이 왕=조..

오항녕의 조선 2021.04.30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4~5인 자영농이 대세, 아들딸에 균분·분할 상속했다[출처: 중앙일보]

소가족·소농의 시대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의 ‘경직도’(耕織圖) 가운데 타작 부분.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흥겨운 장면이다. [사진 공아트스페이스] 계해년(1623) 3월 14일, 반정(反正)이 일어났다. 광해군대 내내 궁궐 공사에 매년 호조 세금의 15~25%를 낭비했던 영건도감을 비롯해 궁중의 푸닥거리를 맡았던 나례도감 등 12개의 난립했던 임시관청을 없앴다. 왕실에 현물로 바치던 세금도 급하지 않은 종류는 없앴고, 반정에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줄 곡식도 중지했다. 폐위된 군주인 광해군대의 역사를 담은 『광해군일기』는 간행되지 못하고 초고 형태로 남았다. 조선왕조 처음으로 실록 편찬이 미완으로 끝났다. 그만큼 광해군대의 실정이 낳은 국가 재정의 압박은 심했다. 농민의 생활 안정이 국가의 기초 세금 제..

오항녕의 조선 2021.04.30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열하일기’ 박지원의 당당함, BTS의 보편성에 닿다[출처: 중앙일보]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열하일기’ 박지원의 당당함, BTS의 보편성에 닿다 ‘오래된 미래’ 조선 속으로 겸재 정선의 걸작 ‘비 개인 인왕산’(仁王霽色圖). 조선의 산에는 소나무·참나무에 진달래가 소복소복한데, 그 속은 화강암이다. 속이 옹골찬 시대의 조선 사람들 같다. [중앙포토] “하늘이 수많은 백성을 낳고 임금을 세웠으니, 임금은 백성을 먹고살게 하고, 다스려 편안하게 한다. 임금의 길에 잘잘못이 있으면 그에 따라 민심이 따르거나 등질 것이고 천명 또한 머물든지 떠나갈 것이다. 이는 변치 않는 이치이다.” ‘게으르다’ ‘부패했다’라는 이미지 제국주의가 덧씌운 일방적 낙인 ‘서구 근대’에 저항한 500년 문명 미래 향한 비전으로 재조명해야 1392년 7월 28일, 조선 태조가 즉위하면서 반..

오항녕의 조선 2021.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