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항녕의 조선 23

10살 이상 많아야 형…친구로서 서로 존중하라

10살 이상 많아야 형…친구로서 서로 존중하라 중앙일보 청소년 가이드북 ‘격몽요결’ 조선시대 나라에서 70세 이상 노인에게 베푼 잔치를 그린 ‘기영회도(耆英會圖)’. 꼿꼿하게 앉아 상을 받는 노인들의 자태가 눈에 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나이가 자기보다 곱절이 되면 아버지처럼 대하고, 10살 이상 많으면 형으로 대하며, 5살 이상 많으면 어느 정도 공경하는 게 좋다.” 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에 나오는 말이다. 조선 후기 예조나 지방 감영에서 수백 본을 간행, 배포했다. 『격몽요결』은 일종의 ‘청소년을 위한 스타일북’이다. 한창 배울 나이의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몸가짐과 태도에 대한 핵심 코멘트였다고 하겠다. 요즘과 같은 선배·고참문화 없어 나이차 뛰어넘는 동무·친구 관계 일찍 일어나기 등 ..

오항녕의 조선 2021.12.20

부계·모계 함께 올려…가부장 ‘호주’ 없었다

부계·모계 함께 올려…가부장 ‘호주’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11.12 00:28 조선시대 호적에 대한 오해 17~18세기 경남 산청 단성현(헌재 산청군 남부) 주민들의 호적 장부를 보관했던 단성향교. 2000년대 초,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논의가 뜨거웠다. 폐지론자는 호적제도는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작성한 민적(民籍)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이 의견은 사실이다. 반면 호주제 존속을 주장한 쪽에서는 호적제도와 부계 성씨는 ‘우리의 전통’이므로 폐지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마치 전통을 지키는 듯 목소리를 높였던 자칭 ‘유림’에서 정작 조선의 호적에 대해 몰이해를 드러냈다. 과거 호적을 떼보면 아버지가 호주로, 위로 할아버지/할머니, 그리고 이하 가족 상황이 나왔다. 호적..

오항녕의 조선 2021.11.12

노예보다 농민에 가까워…가족구성도 평민과 비슷

노예보다 농민에 가까워…가족구성도 평민과 비슷 중앙일보 입력 2021.10.15 00:29 업데이트 2021.10.15 01:30 노비제, 사실과 편견 사이 조선 후기 화가 김득신(1754~1822)의 ‘노상알현도(路上謁見圖)’. 길에서 우연히 만난 양반과 상민의 모습이 조선시대의 신분 질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 평양조선미술박물관] 지난 칼럼(9월 17일자)에서 조선 노비제의 추이, 노비의 평민화 정책을 살펴보았다. 부모 중 한쪽이 노비면 자식도 노비가 되던 조선 전기의 정책 기조에서, 17세기가 되면서 아버지가 양인이면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니가 양인이라도 자식이 양인이 되는 정책으로 바뀌었다고 서술했다. 약간의 논란은 예상했지만 실제 댓글은 더 흉흉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조선..

오항녕의 조선 2021.10.15

“노비제는 천리에 어긋나도다, 커다란 변고로다”

“노비제는 천리에 어긋나도다, 커다란 변고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17 00:31 조선은 노비제 사회인가 김홍도 『풍속도첩』중 ‘벼타작’. 보물 527호. 일꾼들은 나락을 터느라 바쁜데 자리 깔고 한잔하는 양반들은 분명 뒷담화에 오르지 않았을까. 정치적 자기의식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동방의 노비법, 개벽 이래 이런 것 없었도다. 백 대, 천 대 이르러도, 대대로 남의 노비 되네. 귀천의 형세가 억지로 정해지니, 커다란 변고로다 천리에 어긋나도다!” 조선시대 학자의 시 일부이다. 지은이는 윤봉구(尹鳳九·1681~1767). 송시열의 제자인 권상하의 제자로, 송시열의 묘지문을 썼으며 충청도에 살던 성리학자였다. 이 말은 그의 사상의 표현이기도 하고, 현실의 반영이기도 ..

오항녕의 조선 2021.09.17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조선 사람들도 훈민정음 100주년 기념했을까[출처: 중앙일보]

서양과 다른 시간 구분 조선시대 세종 때 선보인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 복원품. [중앙포토] 올해는 광복절을 맞아 귀한 일이 있었다. 봉오동 전투의 지휘자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왔다. 순국한 지 78년 만이고, 연해주로 간 지 꼭 100년 만이다.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까지의 길은 강제이주라는 고려인의 아픈 역사가 있었다. 봉오동 전투 100주년인 지난해 귀환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돌발로 연기됐다고 한다. 100주년에 맞췄으면 더 나았으려나? 부질없는 생각이다. 홍범도 장군에게 무슨 영예가 더하겠는가. 그래도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떠올리고 구획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탄생·죽음의 ‘60갑자’가 기본주기 하루는 24시간 아닌 12시, 96각 계절·절기 등 자..

오항녕의 조선 2021.08.20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당파 싸움으로 3족·9족 멸했다”는 가짜뉴스[출처: 중앙일보]

‘사이비 역사’의 선정주의 정조의 독살설을 다룬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박종원 감독의 ‘영원한 제국’(1995·왼쪽). 실제 역사와 영화·드라마의 분별이 필요하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딱딱한 도학자는 편견’이란 제목이 달린 지난달 내 글(6월 25일자)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그렇게 정 많은 조선 사대부들. 당파 싸움엔 3족 9족을 멸하고 형언할 수 없는 고문에다 당파 싸움에 진 상대방 사대부 부인과 딸들을 노비와 성적 노리개로 삼은 것은 참 미스터리외다.” 상대편 아녀자 노예로 삼지 않아 정조 독살설은 사랑방 얘기 수준 “주자 이론 손질하면 죽음”도 오해 역사와 드라마 혼동해서는 곤란 해당 칼럼 내용은, 조선사람들은 인간을 이성(理性)보다 정(情)의 존재로 이해했다, 이성을 강조하기보다 잘 울고 ..

오항녕의 조선 2021.08.09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딱딱한 도학자는 편견일 뿐…사람다움의 시작은 정[출처: 중앙일보]

사대부들의 눈물 조선 말기에 활동한 풍속화가 기산(箕山) 김준근의 ‘효자 거묘 살고’. 슬퍼할 때 슬퍼하고 기뻐할 때 기뻐하는 게 조선시대 사람살이의 기 본이었다. [사진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건너 이웃집 애 우는 소리 듣고, 몇 번인가 네가 우나 착각했나니, 지난해 너와 같은 때 태어난 아이, 어느덧 이제 벌써 말을 배운단다. 눈물 참으려 눈길을 떨구었건만 잊으려 해도 다시금 보고 싶구나. 울음소리 삼키고 컴컴한 벽 향했으니 네 어미 알까 두려웠기 때문이라.” 편지·시문에 수없이 나오는 울음 세상 슬픔 공감하며 자신을 닦아 퇴계·율곡의 사단칠정 논쟁 유명 부단한 마음공부로 치우침 경계 조선 문신 김수항(金壽恒·1629~1689)이 어린 자식이 죽은 ‘1월 6일’에 쓴 열 편의 시 가운데 일부다. ..

오항녕의 조선 2021.08.09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기우제 지낸 유학자, 절 짓는 사대부 많았다[출처: 중앙일보]

억불숭유, 그 반쪽의 진실 용은 동양 사회에서 제왕을 상징했다. 또 용 그림은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기우제에 자주 사용됐다.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제작된 민화 ‘운룡도(雲龍圖)’다. 상하좌우 네 귀퉁이에 ‘수탁용도(水濯龍圖)’라고 적혀 있다. [사진 갤러리조선민화] #장면 1 자연과 죽음 앞에 선 인간의 한계 귀신 부정하는 유교도 불교 포용 건국 초 탄압받던 사찰 중건 늘어 나라살림 안정되며 관용 폭 커져 “먹는 것이 백성의 하늘이고 백성에게 신령이 의지하나니, 백성이 아니면 신령이 배를 곯고 식량이 아니면 백성이 굶주리나이다…. 토지와 샘이 타들어 가고 농지를 포기한 채 농사짓지 못하여, 온 고을이 불사른 듯하니 하민(下民)들이 탄식하고 있나이다…. 재해를 당함이 이토록 혹독하..

오항녕의 조선 2021.08.09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사관의 붓은 공론의 시작, 왕·관료들에 ‘떠든 아이’ 효과[출처: 중앙일보]

왕도 못 보는 조선실록 지난해 여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 보물전’에 출품된 조선실록을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뉴스1] 조선 초 문종(文宗) 2년 어느 날, 이현로(李賢老)는 승정원으로 갔다. 그는 담당자인 주서(注書)에게 부탁하여 『승정원일기』에 ‘뇌물 받은 관리(장리·贓吏)’라고 자신을 기록한 부분을 ‘무거운 죄(중죄·重罪)’로 고쳤다. 그는 병조에 근무할 때 뇌물을 받아 처벌받은 적이 있었다. 바른말 하다가 귀양 간 것도 ‘중죄’이므로, ‘장리’ 대신 ‘중죄’로 바꾼 것은 이른바 물타기를 한 셈이다. 『승정원일기』는 청탁으로 고쳤지만, 『문종실록』에 남았고, 『세종실록』엔 뇌물청탁죄가 더 상세히 남아 있다. 당대 국가 공무 빼놓지 않고 기록 관련 사실 누출하면 중징..

오항녕의 조선 2021.04.30

[오항녕의 조선, 문명으로 읽다] 조공·책봉의 관계, 평화·경제효과도 있었다[출처: 중앙일보]

동아시아, 제국과 평화 사이 북관(北關·함경도) 지역에서 활약한 인물을 그린 ‘북관유적도첩(北關遺蹟圖帖)’에 실린 ‘야연사준도(夜宴射樽圖)’. ‘밤에 잔치를 하던 중 술동이에 화살이 꽂히다’라는 뜻으로, 6진 개척으로 알려진 세종대 김종서의 일화를 그렸다. 조선시대 북방은 몇 사례 소동이 있었지만 대체로 평온했다. [사진 고려대박물관] 조선 태종 7년(1407) 5월 1일, 중국 명나라 영락제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이렇게 말했다. “안남(安南)의 진일규(陳日煃)는 의리를 생각하고 문화를 지향하여 솔선해 공물을 바쳤다. 근래 호일원(胡一元)이 임금을 죽이고 백성을 병들게 하여 원성이 길에 가득했다. 부득이 군사 80만을 거느려 토벌하게 했다.” 북방 수비하는 군사비 부담 줄어 당대 중국·일본에 비해 크게 ..

오항녕의 조선 2021.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