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세설신어] [122] 맹인할마(盲人瞎馬)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두 해 전 연암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현장을 보러 밀운현(密雲縣) 구도하진(九渡河鎭)을 물어물어 찾은 적이 있다. 하룻밤에 아홉 번 황하를 건넜다길래 잔뜩 기대하고 갔더니 고작 폭이 20~30m 남짓한 구불구불 이어진 하천이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연암의 허풍에 깜빡 속았다. 하천을 끼고 난 도로로는 1도(渡)에서 9도까지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때는 길이 없었을 테니 굽은 물길을 따라 몇 차례쯤 물을 건넜겠는데, 아홉 번은 아무래도 풍이 심했다. 캄캄한 밤중에 강을 건널 때 물이 말의 배 위로 차오르다가 말의 발이 허공에 매달리기도 하니, 자칫 굴러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왜 없었겠는가? 간신히 강을 건너자 누가 말했다. "옛날에 위태로운 말에..

[정민의 세설신어] [112] 교자이의(敎子以義)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호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이 하인 최술(崔戌)을 서리로 임명해 중요한 자리를 맡겼다. 얼마 후 과부인 어머니가 찾아와 그 직책을 떨궈 다른 자리로 옮겨달라고 청했다. 이유를 묻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가난해 끼니를 잇지 못하다가 대감의 은덕으로 밥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중요한 직책을 맡자 부자가 사위로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처가에서 뱅엇국을 먹으며 맛이 없어 못 먹겠다고 합니다. 열흘 만에 사치한 마음이 이 같으니 재물을 관리하는 직무에 오래 있으면 큰 죄를 범하고 말 것입니다. 외아들이 벌 받는 것을 그저 볼 수 없습니다. 다른 일을 시키시면서 쌀 몇 말만 내려주어 굶지 않게만 해주십시오." 김좌명이 기특하게 여겨 그대로 해주었다. '일사유사(逸士遺事)'에 나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