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週 漢字 758

[漢字, 세상을 말하다] 秋 추

“한낮엔 덥기가 한여름 같은데 밤이 되니 차갑기가 노추(老秋)와 같구나(白晝炎炎若盛夏 半夜凄凄如老秋).” 송(宋)대 진순(陳淳)이 읊은 노래가 절로 생각나는 계절이다. 낮엔 덥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으스스하다. ‘노추’는 노쇠해 한 과정이 거의 끝나가는 가을이라는 뜻에서 음력 9월을 말한다. ‘다했다’는 의미를 가진 궁(窮)을 써 궁추(窮秋), ‘저물어 간다’는 뜻의 모(暮)를 앞에 붙여 모추(暮秋)라 부르기도 한다. 당(唐)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내리는 비는 그리운 고향을 떠오르게 하고, 강가에 부는 바람은 저무는 가을을 막네(蓬雨延鄕夢 江風阻暮秋)”라 했다. 음력 9월의 저물어 가는 가을은 모상(暮商)이나 계상(季商)으로 일컫기도 한다. 상(商)은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오음(五音) 중 하나로 사계..

한 週 漢字 2020.08.15

[漢字, 세상을 말하다] 善惡 선악

입력 고대 중국에서 양(羊)은 신성한 동물이었다. 재판할 때 원고와 피고가 양 앞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다. 신(神)에게는 진실만을 고(告)해야 한다는 의식에서다. ‘善(선)’은 이를 형상화한 글자다. 글자 ‘羊(양)’의 아랫부분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言(언)’을 더해 만들어졌다. ‘양 앞에서 서로 말을 한다’는 뜻이다. 신 앞에서 인간은 깨끗하고 순결해야 하는 법이다. 여기에서 ‘善’은 좋은 것, 착한 것, 길(吉)한 것이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선의 반대말 ‘악(惡)’은 황실의 무덤과 관계 있는 글자다. ‘亞(아)’는 무덤의 관을 넣는 ‘현실(玄室)’ 모양이다. 현실은 사각형으로 짜여졌고, 그 양옆에 물품을 놓아두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亞’에 ‘心(마음)’이 붙어 ‘惡’이 된 것이다. 황제가 무덤으..

한 週 漢字 2020.08.15

[漢字, 세상을 말하다] 嘉俳 가배

“갠 날씨에 시골 마을 즐거워 떠들썩하네/ 가을 동산의 풍미는 과시할 만하구나/ 지붕엔 넝쿨 말라서 박통이 드러났고/ 언덕의 병든 잎새 사이사이 밤송이가 떡 벌어졌네/ 술잔만 부딪치며 좋은 잔치 맞이하고/ 시구는 전혀 없어도 이웃집에 모이는구나/ 슬퍼라, 늙고 병들어 밤 뱃놀이 못하니/ 달빛 아래 금빛 물결을 구경 못해 아쉽구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추석날 술잔을 나누며 지은 ‘추석에 시골 마을의 풍속을 기록하다(秋夕鄕村紀俗)’라는 제목의 한시(漢詩)다. 명절을 맞아 북적거리는 시골의 모습이 정겹다. 음력 8월 보름을 한국은 추석(秋夕), 중국은 중추절(仲秋節)이라 부른다. 중추절은 맹추(孟秋)·중추(仲秋)·계추(季秋)로 나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명절이란 뜻이다. 우리말로는 한가위다. ‘7..

한 週 漢字 2020.08.15

[漢字, 세상을 말하다]素志 소지

간번지쟁(簡繁之爭)은 한자의 번잡한 획수를 줄인 간체자(簡體字)와 원래 획수를 그대로 살린 번체자(繁體字) 간의 한자 정통성 논쟁을 말한다. 대만·홍콩을 제외한 중국 대륙에서 1956년부터 간체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계속되는 다툼이다. 이 싸움에서 번체자 사용을 주장하는 이가 간체자 옹호자를 공격하는 무기로 자주 활용하는 한자 하나가 있다. 사랑 애(愛)자다. 이를 간체자와 가장 큰 차이점은 가운데 마음 심(心)자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사랑을 뜻하는 글자를 쓰는데 ‘마음’이 빠져 있는 게 말이 되느냐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음에 적지 않은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심(心)은 심장의 모양을 본뜬 글자다. 이 마음 위에 선비 사(士)자가 오면 뜻 지(志)가 된다. 자칫 ‘선비의 마음’으로 해..

한 週 漢字 2020.08.15

[漢字, 세상을 말하다] 福祉 복지

‘福(복)’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사랑받는 글자다. 인생 최고의 가치는 행복(幸福)이요, 돼지꿈 꾸고 당첨되는 건 복권(福券)이었다. 웃는 집 대문으로 들어오는 것 역시 복이다(笑門萬福來). 중국인들은 지금도 집집마다 ‘福’자를 거꾸로 달아 놓고는 ‘복이 왔다(福到了)’고 외친다. 글자 ‘福’의 오른쪽 ‘부()’는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사람의 배(아래의 口)에 십(十)자가 들어 있다. 이는 무엇인가를 많이 먹어 배가 잔뜩 부른 사람을 표현한다. 여기에 부수 시(示)를 붙여 ‘순탄하고, 행운이 찾아온다’는 뜻의 ‘福’자가 만들어졌다. 부자를 뜻하는 ‘富(부)’ 역시 집에 배부른 사람이 있는 형상이다. ‘배불리 먹는 것’이 곧 복의 근원이었던 셈이다. 한비자(韓非子)에 ‘사람이 천수를 누리..

한 週 漢字 2020.08.15

[漢字, 세상을 말하다]今是昨非 지금이 옳고 지난날은 그르다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으니, 앞으로 바른 길을 좇는 것이 옳음을 깨달았다.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 그리 멀어진 건 아니니, 이제야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悟以往之不諫,知來者之可追,實迷途其未遠,覺今是而昨非).’ 1992년 9월 장쩌민(江澤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중국을 국빈 방문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을 만나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인용해 한·중 수교의 소회를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에 과거의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가자며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화답했다. 다섯 달 앞선 1992년 4월 이상옥 당시 외무장관이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 총회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했다. 리펑(李鵬) 당시 총리는 이 장..

한 週 漢字 2020.08.15

[漢字, 세상을 말하다] 北島 북도

경(京)은 높은 곳에 위치한 누각의 모양을 본뜬 글자다. 이런 자형에서 나라의 수도라는 뜻이 나왔다. 북쪽에 자리한 수도 북경(北京)의 한복판에 천안문(天安門)이 처음 세워진 건 명나라 영락제(永樂帝) 때인 1420년. 당시엔 승천문(承天門)으로 불렸다. 하늘의 뜻을 받아 운(運)을 연다(承天啓運)는 뜻이 담겼다. 몇 차례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다 청나라 순치제(順治帝) 때인 1651년 천안문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천명을 받아(受命於天)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리고 민심을 안정시킨다(安邦治國)는 뜻이다.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성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을 선포한 이래 천안문은 중국 정치의 중심이 됐다. ‘비열함은 비열한 사람의 통행증(卑鄙是卑鄙者的通行證), 고상함은 고상한 사람의 묘비명(高尙是高..

한 週 漢字 2020.08.15

[漢字, 세상을 말하다] 經濟 경제

일본에서 명치유신이 한창이던 19세기 중반, 많은 일본 지식인이 서방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들은 새로운 학문을 접했다. 그중 ‘Economics’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과목이 있었다. 이를 어떻게 일본에 소개해야 할까, 그들은 고민했다. ‘가장 낮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을 살려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바로 ‘세상을 바르게 다루어 백성들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이었고, 이를 축약해 ‘경제(經濟)’라고 했다. 경제학은 그렇게 동양에 소개됐다. ‘경세제민’이라는 말이 중국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4세기 전후다. 동진(東晉·317∼419) 시대 학자 갈홍(葛洪)이 쓴 도가(道家) 서적 포박자(抱朴子)는 “홍수가 심할 때 기자(箕子)..

한 週 漢字 202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