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佛 최고훈장 韓 현충원 거부[횡설수설/정연욱] 정연욱 논설위원 입력 2022-10-03 03:00업데이트 2022-10-03 11:18 1951년 2월 경기 양평 ‘지평리’ 전투는 6·25전쟁의 변곡점이었다. 중공군의 인해 전술에 계속 밀리던 유엔군이 거둔 첫 승리로 반격의 계기가 됐다. 유엔군은 미군과 프랑스 대대가 주축이었다. 이 프랑스 대대에는 100여 명의 한국인도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에 입대했으나 영어 소통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프랑스 대대로 차출된 것. 이들의 국적은 엄연히 대한민국이었다. 당시 참전용사 박동하(94), 박문준(91) 옹이 산증인이다. ▷지평리 승전보가 울린 지 71년이 지났지만 프랑스 정부는 두 노병을 잊지 않았다. 올 6월 이들에게 프랑스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