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78] 협력의 역설

bindol 2020. 6. 16. 05:5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1990년 2월 넬슨 만델라의 출소로 남아공 사회는 일촉즉발 위기를 맞는다. 흑백 갈등은 물론, 진보 단체와 극우 보수 진영, 기업과 노동자, 빈민과 중산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1991년 9월 케이프타운 근교 몽플뢰르 콘퍼런스센터에 당시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과 앞으로 권력을 잡게 될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 22인이 모였다.

생각도 다르고 호감은커녕 서로 신뢰하지도 않는 이들을 대화와 타협으로 이끌 진행 중재자로 초빙된 사람은 바로 에너지 기업 로열더치셸의 갈등 조정 전문가 애덤 카헤인이었다. 나는 몽플뢰르 콘퍼런스 성공의 절반은 카헤인 영입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 후에도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을 도와 오랜 내전을 종식하는 등 세계 여러 갈등 지역에 초대되어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그의 책 'Collaborating with the Enemy(적과 협업하기)'가 '협력의 역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여야가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철천지원수처럼 으르렁거린다. 양당 원내대표는 서로 마주 보며 협상해야 할 시간에 연신 국민을 향해 '나는 맞고 상대는 틀렸다'며 손가락질하기 바쁘다. 카헤인은 이런 행위를 '적화(敵化) 증후군'이라 부른다. 국민이 매사에 관여할 수 없어 대신 일하라고 뽑았는데 한 번도 제대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지 못하는 우리 의원들은 영락없는 적화 증후군 환자들이다.

 

 

나는 2020년 대한민국에 필요한 최고의 덕목은 도덕성, 창의성, 근면함이 아니라 마주 앉아 이야기하며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은 세계 최고의 IQ를 지녔고 지나치게 근면하며 충분히 도덕적이다. 상대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도, 합의에 도달하지 않고도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제21대 국회의원과 보좌진 모두의 손에 '협력의 역설'을 쥐여주고 싶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5/20200615045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