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스시한조각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69] 우리 안의 파시즘

bindol 2020. 8. 1. 09:36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1940년 2월 일본 제국의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입헌민정당의 사이토 다카오( 藤隆夫) 의원이 '지나사변 처리에 관한 질문' 제하의 대정부 질문을 한다. 중일전쟁이 진흙탕 싸움이 되면서 일본 국민의 전쟁 피로감이 더해가던 때였다. 그는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대동아 질서'라는 전쟁 명분의 실체를 묻는 한편, 전쟁 장기화로 국력 손실을 초래한 군부의 독선과 무능을 지적하고 정부의 대책을 추궁하였다.

'뜬구름 잡는 명분으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어리석음', '성전(聖戰)의 미명 운운' 등 직설적 표현을 마다하지 않고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 사이토의 웅변에 의회가 술렁거렸다. 군부의 위세에 눌려 눈치만 보던 의원들 사이에서 간간이 박수가 흘러나왔고, 연설 후에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사이토의 손을 부여잡는 의원도 있었다.

소위 '반군(反軍) 연설'로 알려진 이 연설은 군국주의자들로부터 '성전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격렬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사이토는 반전주의자도 아니었고 황국 이념을 부정하는 반체제 인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의회의 일원으로서 견제되지 않는 권력에 의한 입헌주의 형해화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파시즘의 광기에 빠져 있던 당시 시대상 속에서 그의 소신은 '불경(不敬)'으로 취급되었고, 그는 결국 징벌위원회에 회부되어 의원직 제명이라는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는다.

 

2년 뒤 치러진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한 사이토는 군부와 우익의 집요한 방해에도 출마구에서 최다 득표로 당선되었다. 유권자들이 투표로써 사 이토 제명의 부당함에 항의를 표하고 그의 신념을 지지한 것이다. 국론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사이토가 겪은 고초는 남의 나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기시감마저 느껴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을 경계하는 소수를 '배신자'로 낙인찍으며 민주주의를 참칭하는 것만큼 민주주의 모독에 해당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9/20200709044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