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4월 에도개성(江戶開城)으로 도쿠가와 막부의 본거지 에도가 메이지 신정부에 의해 접수된다. 적의 심장부에 무혈 입성한 신정부군은 즉각 막부군 해체에 나선다. 권력 교체의 혼란이 거듭되던 그해 여름, 막부 해군 지도자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1836~1908)는 항전파를 규합하여 8척의 군함을 이끌고 에도를 탈출한다.
신정부군 추적을 피해 에조(蝦夷·현 홋카이도)에 근거지를 마련한 이들은 12월 독자 정부 수립을 선언한다. '에조공화국'으로도 알려진 구막부군 정부의 최고지도자(총재)로 선출된 에노모토는 신정부의 공적(公敵) 1호였다. 이듬해 신정부와 에조공화국 사이에 벌어진 무력 충돌을 '하코다테(箱館) 전쟁'이라고 한다. 양측 전사자만 1300명에 달하는 대규모 내전이었다. 역사가들은 이 전쟁에서 신정부군이 승리함으로써 비로소 '보신(戊辰) 전쟁'이 종결되고 정권 교체가 완료된 것으로 간주한다.
그로부터 3년 뒤 신정부는 갑론을박 끝에 에노모토를 사면한다. 그의 특사(特赦)에 앞장선 이는 공교롭게도 하코다테 토벌을 진두지휘한 적장 구로다 기요타카(黒田清隆)였다. 구로다는 네덜란드 유학파로 서구 문명에 조예가 깊은 신지식인 에노모토가 신정부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인재라는 소신하에 삭발까지 단행하며 엄벌 여론을 누르고 사면을 관철했다.
구원(舊怨)을 잊고 신국가 건설에 힘을 합치자는 구로다의 충언에 마음을 움직인 에노모토는 신정부의 일원으로 제2의 인생을 산다. 그는 홋카 이도 개척 임무를 부여받아 행정가로서 수완을 발휘하고 주러·주청 공사에 임명되어 외교관으로 활약하였으며, 훗날 체신·문부·외무·농수산 대신으로 중용되며 일본 근대화를 견인한 주역의 한 사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나라 잃은 시대에 충성의 대상을 달리한 과(過)와 위기의 나라를 구한 공(功)이 공존하는 인물의 역사적 평가에 참고할 만한 사례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