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308] 매륜남비(埋輪攬轡)

bindol 2020. 8. 3. 05:3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일이다. 장강(張綱) 등 8인에게 전국을 순시해서 관리들의 비리를 규찰하라는 명이 내렸다. 모두 명을 받들어 해당 지역으로 떠났다. 장강만은 낙양의 도정(都亭)에다 수레바퀴를 파묻고 이렇게 말했다. "승냥이와 늑대가 조정을 맡고 있는데 여우 살쾡이를 어이 물으리(豺狼當路 安問狐狸)." 그러고는 당시 권력을 멋대로 농단하던 대장군 양기(梁冀)가 임금을 업신여긴 일을 15가지로 조목조목 나열하며 격렬하게 탄핵했다. 낙양이 이 일로 발칵 뒤집혔다.

후한 환제(桓帝) 때 기주(冀州) 땅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다. 도적 떼가 창궐하고 탐관오리가 횡행해 민심이 흉흉했다. 황제는 범방(范滂)을 청조사(淸詔使)로 보내 비리를 척결케 했다. 범방은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으며 천하를 반드시 맑게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그가 기주에 도착하자 탐관오리들이 지레 겁을 먹고 인끈을 풀어놓고 달아났다. 모두 '후한서'에 나온다.

한 사람은 매륜(埋輪), 즉 수레바퀴를 파묻어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나라의 당면한 급선무는 조정 안에서 권력을 잡고 제멋대로 날뛰는 큰 도적을 잡는 것이지 저 지방 하급 관리의 비위를 조사하는 것은 급하지 않다는 뜻이다. 한 사람은 남비(攬轡), 곧 고삐를 고쳐 잡아 부패 척결 의지를 다져 쥐새끼 같던 무리들이 제 풀에 도망갔다. 둘 다 굳센 뜻으로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운 것은 같다.

연일 터져 나오는 국방 비리가 점입가경이다. 그들은 나랏돈을 제 주머닛돈으로 알았다. 그러고도 당당해서 카메라 앞에서 눈을 똑바로 뜬다. 자식 같은 장병들의 목숨을 적에게 내준 것보다 더 악하다. 물이 줄 줄 새고 있는데 비열하게 담합하던 그 입으로 군대의 기강을 떠들고 돈 만지던 그 손에 나라의 방위를 맡겼다. 매국노도 이런 매국노가 있는가? 한나라 성제(成帝) 때 지방관이었던 주운(朱雲)이 어전에 뛰어들어 "신에게 상방(尙方)의 참마검(斬馬劍)을 내려주소서. 아첨하는 신하 한 사람을 처단하여 그 나머지를 분발케 하겠나이다" 하던 외침이 자꾸 귀에 맴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3/31/20150331046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