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건륭제(1711~1799)는 63년간 재위하다가 만 88세로 세상을 떴다. 그는 재위 기간에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펴내는 등 중국 문화 선양에 크게 공헌했다. 마상황제(馬上皇帝)란 말이 있을 만큼 전역을 순행(巡幸)했고, 평생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세상에 남긴 시가 4만2000여 수다. 그의 치세(治世) 경륜을 담은 어록집 '건륭잠언(乾隆箴言)'을 읽었다.
경험에서 나온 묵직한 말이 적지 않다. 특별히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을 중시했다. "임금 노릇이 무에 어려우랴. 사람 알아보기가 가장 어렵다(爲君奚難? 難于知人)."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을 임금의 가장 큰 덕목으로 꼽았다. "자식을 잘못 아는 것은 그 해가 오히려 한 집안을 넘지 않는다. 신하를 잘못 알아보면 그 해가 장차 나라와 천하에 미친다(誤知子者, 其害猶不過一家. 誤知臣者, 其害將及國與天下)." 자식을 잘못 알면 패가망신으로 끝나지만, 임금이 신하를 잘못 쓰면 그 해악이 나라를 망치고, 천하를 어지럽게 만든다.
건륭제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은 반드시 사람을 알아보는 데에 달려 있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보다 더 어렵다. 사람을 능히 알아볼 수 있다면 불안해하는 백성이 없게 된다(安民必在于知人, 而知人尤難于安民. 能知人則無不安之民矣)."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에서 고요(皐陶)가 우(禹) 임금에게 임금 노릇의 요체가 "사람을 잘 아는 데에 달려 있고, 백성을 편안히 하는 데에 달려 있다(在知人, 在安民)"고 강조한 대목에서 따 왔다.
한 단락 더. "공경해도 게으르지 않고, 공정하되 사사로움 없이,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고, 부지런해도 조급하진 않게. 이렇게 한 뒤라야 상벌이 분명하고 진퇴가 합당하며, 완급이 적절하고 상황에 알맞게 될 수가 있다(敬而不懈, 公而無私, 泰而不驕, 勤而非躁. 然後能賞罰明而進退當, 緩急應而機宜合)." 큰일 앞에 태연한 것이 '그래 봤자'의 교만이어서는 안 되고, 부지런히 애를 쓴다는 것이 조급하게 일을 망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말로는 공정을 내세우면서 사욕을 슬쩍 끼워 넣고, 위해주는 척하면서 함부로 대하는 것은 윗사람의 그릇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