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모술수(權謀術數)’는 한국에서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묘한 술책으로 풀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희(朱熹)는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권모술수를 ‘공명(功名)을 얻기 위한 설’로서 인의(仁義)를 저해하는 개념으로 기술하고 있다. 주자학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 ‘권모술수에 능하다’는 표현은 모욕에 가깝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비책(秘策)의 의미로 통하기도 하고, 세(勢)나 시운(時運)의 불리함을 극복하는 처세술로 취급되기도 한다. 하극상이 난무하던 전국(戰國)시대를 거친 역사 탓인지 이기기 위한 방책, 의지를 관철하고 현실을 바꾸는 능력을 추구함에 있어 도덕에 구애받지 않는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측면이 있다.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권모술수의 달인으로 손꼽힌다. 1615년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제거하기 위한 오사카성 전투가 대표적이다. 이에야스는 깊은 해자(垓字)로 인해 공략이 난관에 봉착하자 신형 대포로 성 중심부를 포격하고는 연이어 화친을 제의한다. 적 내부를 이간질하고 분열시키기 위한 강온 양면책이었다. 교묘한 심리전에 대오가 무너진 히데요리 진영은 해자를 없애는 조건의 화친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이듬해 오사카성은 도쿠가와군의 재침(再侵)을 견디지 못하고 함락된다. 현대 정치에서도 다양한 양태의 권모술수가 존재한다. 성동격서, 이간계, 이이제이, 어부지리, 토사구팽, 원교근공 등 고전적 수법에 착안하여 지지층 결집과 상대 진영 와해를 위한 여론 조작, 편 가르기, 프레이밍(framing) 등을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 권력 획득과 유지에 긴요하다. 전공의 파업 사태 와중에 뜬금없이 나온 대통령의 간호사 격려 메시지는 권모술수 정치의 일면이 지나치게 드러난 사례가 아닌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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