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종전 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최고사령부(GHQ)는 국가 신도 철폐에 나선다. 군국주의를 초래한 정신 구조 기저에 '천황국체론'과 그를 종교화한 국가 신도가 있다고 봤기 때문. GHQ는 전쟁 책임이 있는 조직이나 운동이 종교의 가면을 쓰고 존속하는 걸 원치 않았다. GHQ 지침에 따라 히로히토 국왕은 '인간 선언'으로 신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학교를 포함한 모든 공적 기관에서 국가 신도는 금지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게 야스쿠니 신사 처리였다. GHQ는 신사가 군국주의적 국가주의의 정신적 중추라는 문제의식이 있었지만, 정교분리와 종교 자유 보장이란 대원칙이 있어 고심하고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폐사(廢社)되어도 이상할 게 없던 야스쿠니 신사가 존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톨릭 사제가 관련되어 있다.
맥아더 사령관이 일본 사정에 정통한 예수회 소속 브루노 비터 신부와 메리놀 선교회 소속 패트릭 번 신부에게 의견을 묻자, 비터는 어떤 국가라도 국가를 위해 희생된 전몰자에 대해 경의를 표할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국가 신도 철폐와 별개로 추도 시설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파괴하는 건 점령군의 범죄 행위라고 반발했다는 것이다. 번 역시 종교의 자유 관점에서 신사 폐지에 반대했고 이들 의견이 반영되어 야스쿠니 신사가 국가와 분리된 종교법인으로 존치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 정책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와 별개로 비터 신부의 야스쿠니 옹호론은 일본 내에서 꽤 알려진 얘기다. 문제는 일본 우익들이 관용과 화해의 관점에서 제시된 이런 외국 종교인들 의견을 야스쿠니가 표방하는 전쟁 미화 역사관에 대한 비판 여론을 무마하고 정치인 참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곡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타국을 지배하며 원치 않는 종교를 강요한 역사에 대한 반성이 결여된 채 자신들 종교의 자유를 강변하는 이중성이 주변국 신뢰를 저해하고 궁극적으로 일본 국익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