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유림) 한자이야기

[儒林 속 한자이야기] (92)符信(부신)

bindol 2020. 9. 13. 05:44

 


[儒林 속 한자이야기] (92)符信(부신)

 

 

유림 속 한자이야기] 符信(부신) 儒林 (442)에는 ‘符信’(부절 부/믿을 신)이 나온다. 이것은 ‘나뭇조각이나 두꺼운 종이에 글자를 기록하고 證印(증인)을 찍은 뒤, 두 조각으로 쪼개어 한 조각은 상대자에게 주고 다른 한 조각은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서로 맞추어서 證據(증거)로 삼던 물건’을 말한다.

‘符’자는 옛날 행정 사무의 證據나 信標(신표)로 삼기 위한 대나무 쪽을 가리킨다. 후에 ‘도장’‘맞다’ 등의 뜻이 派生(파생)하였다.活用(활용) 예로는 符合(부합:符信이 꼭 들어맞듯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符號(부호:일정한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따로 정하여 쓰는 기호) 등이 있다.

‘信’자는 본디 ‘성실하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考案(고안)되었다.‘人’과 ‘言’(말씀 언)을 組合(조합)하여 사람의 말과 성실성은 不可分(불가분)의 關係(관계)에 있음을 暗示(암시)한다.‘信念(신념:굳게 믿는 마음),信賞必罰(신상필벌: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信實(신실:믿음직하고 착실함)’ 등에 쓰인다.

交通手段(교통수단)과 情報(정보) 媒體(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符信이 신분확인을 위한 요긴한 수단이었다. 용도와 종류에 따라 發兵符(발병부)·通符(통부)·宣傳標信(선전표신)·木馬牌(목마패)·大將牌(대장패) 등 다양하였다.

符節(부절)도 일종의 符信으로 볼 수 있는데,符信과의 차이점은 글자와 證印이 없다는 것이다.三國史記(삼국사기)에는 高句麗(고구려) 建國始祖(건국시조) 高朱蒙(고주몽)이 短刀(단도)를 符節로 삼아 親子(친자)를 確認(확인)한 崎嶇(기구)한 事緣이 전한다. 주몽은 큰 뜻의 실현을 위해 姙娠(임신)한 예씨 부인과 작별하면서,“아들을 낳거든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의 돌 위 소나무 밑에 간직되어 있는 물건을 찾아 가지고 오라.”는 말을 남겼다. 예씨 부인은 出産(출산)한 아이의 이름을 琉璃(유리)라고 하였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 유리는 일곱 모난 주춧돌 아래서 발견한 칼 한 쪽을 들고 주몽을 찾아갔다. 주몽은 지니고 있던 조각난 칼을 꺼내 맞추어 보고 자신의 아들임을 確認(확인)한다.

三國史記에는 新羅(신라) 眞平王(진평왕)때의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경주에 사는 설씨(薛氏)는 늙은 홀아비로 오직 딸 하나만 데리고 살았으나, 변방지역의 警備(경비)에 나아가라는 通報(통보)를 받는다. 그때 沙梁部(사량부)에 사는 嘉實(가실)이라는 청년이 兵役(병역)을 대신하겠다고 나선다.感泣(감읍)한 父女(부녀)는 가실과의 婚姻(혼인)을 約條(약조)하고 거울을 반으로 갈라 信標(신표)로 나누어 가진다.6년 만에 다시 설씨 부녀 앞에 나타난 가실의 行色(행색)은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초라하였다.破鏡(파경)을 꺼내 맞추어 보고서야 가실임을 確認할 수 있었다.

漢(한)나라 高祖(고조) 劉邦(유방)은 諸侯(제후)를 分封(분봉)하면서 丹書鐵券(단서철권)을 나누어 주었다. 약칭 鐵券(철권)이라 하는 이 물건은 오늘날의 任命狀(임명장)에 해당한다. 쪼갠 칼이나 거울, 세트로 만들어진 鐵券이 모두 符節에 속한다. 여기서 ‘節’은 마디라는 뜻이니 끼워 맞춘다는 의미를 含蓄(함축)하고 있으며,‘符’란 符合(부합)한다는 뜻이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