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存以甘棠하니 [80] 去而益詠이라
생전에는 감당나무 보존하여 기념하고
사후에는 시를 지어 더욱더욱 기렸도다
[79] 存以甘棠하니 : <召公이> 감당나무 아래에 머무니
[80] 去而益詠이라 : 떠남에 더욱 <甘棠詩를> 읊는다.
存(있을 존) 以(써 이) 甘(달 감) 棠(아가위 당)
去(갈 거) 而(말이을 이) 益(더할 익) 詠(읊을 영)
[79] 存以甘棠하니 : <召公이> 감당나무 아래에 머무니
周召公奭이 在南國之日에 止舍於甘棠之下하니 南國之人이 無不從其敎化焉하니라
주나라 召公 奭이 남쪽 제후국에 있을 때에 감당나무 아래에 머물러 있으니, 남국의 사람들이 그 교화를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80] 去而益詠이라 : 떠남에 더욱 <甘棠詩를> 읊는다.
及其去也에 則民益思慕하여 作甘棠詩하여 曰 蔽芾甘棠을 勿翦勿伐이어다 召伯所茇이라 하니 可見其澤之入人深也라
* 茇:풀뿌리발 -‘野舍(들에 있는 집)라는 뜻이 있으므로, 野宿했다는 뜻이 된다.‘
소공이 떠나가자, 백성들이 더욱 그를 사모하여 감당시를 지어 “무성한 감당나무를 베지 말고 치지 말라. 召伯(소백:召公)께서 머물렀던 곳이다.“ 하였으니, 그 은택이 사람들에게 깊이 들어갔음을 볼 수 있다.
[해설]
주나라 召公 奭은 召 땅을 다스릴 때[存] 팥배나무[甘棠 : 아가위나무] 아래서 백성들의 형편을 보살핀 까닭에[以]그가 죽은 뒤에도[去而] 백성들은 그의 덕을 기려[益]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다[詠]
위 구절은 詩經 國風 召南篇에 나오는 甘棠詩를 말한 것이다.
召伯은 기원전 8세기 초부터 7세기 말에 주나라 선왕의 명을 받아 남쪽 지방을 평정하고 다스린 소목공 호(召穆公 虎)를 가리킨다(召公 奭이란 설도 있으나 시대적으로 앞서 있기에 맞지 않는다). 그가 백성들을 위하여 일하다 쉬었던 나무라 하여 모두가 아꼈는데 이는 백성들이 그를 얼마나 따랐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殷나라 紂王을 쳐서 멸하고 周나라를 일으켜 세운 武王은 (성은 姬 이름은 發) 친척인 奭을 召 땅의 제후로 삼아 다스리게 했다. 奭은 어진 인품과 덕으로 백성들을 가르치고 보살폈는데 백성들은 그 어진 인품을 칭송하여 召公 또는 召伯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召公이 남쪽 고을을 돌아보며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다가 어떤 고을에 들어가서는 자신의 행차가 백성들에게 累가 될 것을 염려하여 마을 어귀에 있는 팥배나무 아래에서 자리를 정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묻고 정사를 돌보며 쉬기도 했다. 소공의 어진 덕에 감화된 백성들은 소공이 죽은 뒤에도 그의 덕을 기리며 칭송의 노래를 읊었다.
[참고1] 存(있을 존)
在(있을 재)와 같은 의미로 자손을 보존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在는 才(바탕 재)와 자원(字源)이 통하고 발음도 같다. 三才(天才 地才 人才)의 도가 바탕이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三才의 지극한 작용을 三極(天極 地極 人極)이라 이른다.
[참고2] 甘(달 감)
입을 뜻하는 口안에 一을 더한 형태. 대개 입안(口)에 들어 있는 음식(一)은 달고 맛있음을 의미한다.
水火木金土 五行에 바탕한 다섯 가지 맛을 五味라고 한다. 五味에는 북방 水의 鹹, 남방 火의 苦, 동방 木의 酸, 서방 金의 辛, 중앙 土의 甘이 있는데, 중심에 해당하는 土의 甘味에 의해 곡식이나 과일이 감미로운 맛이 있게 된다.
五旺의 절기에 관련지어 살펴보면 火旺之節인 여름의 뙤약볕 아래 만물이 익으면서 이른바 火生土를 이루어 苦盡甘來가 있게 된다. 곡식이 여물고 과일이 익으면 자연 단 맛을 내게 되는 것이 모두 중앙 土의 甘味에 말미암는다. 약방문에 항상 甘草가 끼는 까닭도 쓴 약맛을 적절히 달게 하여 먹기 쉽도록 하는 한편 土에 해당하는 脾胃를 튼튼히 해주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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