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字文 工夫

綺回漢惠 說感武丁

bindol 2020. 11. 13. 15:46

綺回漢惠 說感武丁

 

本文

綺回漢惠 說感武丁 기회한혜 열감무정

기리계(綺里季)는 한()의 혜제(惠帝) 태자보위(太子寶位) 찾게 하고

부열(傅說)은 무정(武丁)을 감복(感服)하게 하였도다.

 

訓音

비단 기 돌 회 한나라 한 은혜 혜

기쁠 열 느낄 감 호반 무 넷째천간 정.

 

解說

지난 번에 기회한혜 열감무정(綺回漢惠 說感武丁) 중 기회한혜(綺回漢惠)를 설명하다가 이야기가 길어져서 열감무정(說感武丁)을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제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기회한혜의 역사적 배경은 중국을 재통일한 한()나라의 이야기지만 이번 이야기할 열감무정은 다시 역사를 소급하여 주()나라 이전 상(. )나라 때의 이야깁니다.

 

열감무정(說感武丁)

부열(傅說)은 무정(武丁)을 감복(感服)하게 하였도다.

()은 우선 '말씀 설'이라 새겨지는 글자인데 여기서는 인명(人名)으로 쓰인 ''자이지만 대표적인 '말씀 설'로 자원(字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은 언() + ()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맺혀져 있던 것이 풀리다'의 뜻입니다. 따라서 설()은 말[]로서 맺혀진 것을 풀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말씀'을 나타내며, 이 글자가 맺힌 것을 풀기 위해 상대를 달래어 자기 의견에 따르게 한다는 의미에서 쓰일 때는 '달랠 세'로 발음합니다. 유세(遊說)가 그 예입니다. , 기쁨을 뜻할 때는 '기쁠 열'로 발음합니다. 기뻐함을 나타내는 열희(說喜)가 그 예입니다. 여기서는 사람의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고대 상()나라 때 재상을 지낸 부열(傅說)을 말합니다.

()은 심() + ()의 회의자(會意字)입니다. ()'큰 위압(威壓) 앞에 목청껏 소리를 내다'의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큰 자극(刺戟) 앞에 움직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는 지() + ()의 회의자(會意字)입니다. ()는 발을 본뜬 모양으로 '가다'의 뜻입니다. '[)]을 들고 전장에 나가다[]'의 뜻입니다. 창을 들고 전장에 나가는 사람들은 무인(武人)들이기에 '무인(武人), 무사(武士)'의 의미가 있고, 그들은 무용(武勇)이 있으므로 '굳세다, 용감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글자를 '호반 무'라고 하는데 호반(虎班)이란 무반(武班)의 별칭입니다. 무반(武班)의 관복(官服)에는 호랑이를 수놓은 문양의 흉배(胸背)를 답니다. 무반(武班)은 무인들이기에 칼, , 활 등을 잘 쓰는 사람으로 용맹스럽기가 호랑이와 같기 때문에 호랑이를 무인의 상징으로 씁니다. 이에 반해, 문반(文班)은 글을 잘하는 선비들로 학처럼 고고한 기상을 가졌기 때문에 흉배에 학을 수놓습니다. 그래서 문반을 일러 학반(鶴班)이라고도 합니다.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을 양반(兩班)이라 하고, 문반(文班)을 동반(東班) 또는 학반(鶴班)이라 하고, 무반(武班)을 서반(西班) 또는 호반(虎班)이라 합니다.

()은 상형자(象形字), 못을 대가리 위에서 본 모양입니다. 뒤에 옆에서 본 모양을 본떠, ''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소전(小篆)의 글씨 ''에서 ''은 가지와 잎, ''은 줄기로서 초목이 무성한 모양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성하다'는 뜻이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성한 때는 성년(成年)이니, 이를 '장정'이라 합니다.

흔히 이 글자를 '고무래 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글자 모양이 고무래와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속훈(俗訓)에 불과합니다. 이 정은 넷째천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오행(五行)으로 화()이며, 방위로는 남()에 배당됩니다. 이에 전용되어 등급순서 등을 매길 때 넷째에 해당합니다.

 

상나라를 부흥시킨 무정(武丁) 고종(高宗)

열감무정(說感武丁)은 부열(傅說)은 무정(武丁)을 감복(感服)하게 하였다는 이야기인데, 부열(傅說)은 누구이며 또, 무정(武丁)은 누구인가? 부열은 어떻게 무정을 감복하게 했는지 궁금한 것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선 '열감무정(說感武丁)'을 왕왕 '설감무정(說感武丁)'으로 음을 다는 책이 많습니다. 여기서 '''말씀 설'이지만 '달랠 세'로 읽기도 하고 '기쁠 열'로 새기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기쁠 열'자로 쓰여, 고대 상()나라 고종(高宗) 때의 명재상 '부열(傅說)'을 나타내고 있으니 '열감무정'으로 읽어야 맞다고 봅니다. ^^

서경(書經)》『상서(商書)』「열명상(說命上)<무정(武丁)>과 부열(傅說)>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高宗. 武丁)은 친상(親喪, 惠王)을 당하시어 정사를 신하에게 맡기시고 자신은 3년상을 치르셨는데, 상을 벗으시고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모든 신하들이 왕에게 간하였다.

"아아, 사물을 잘 아는 것을 명철하다 하며, 명철해야만 비로소 규범을 만들 수 있습니다.

천자는 나라 전체를 다스리시는 분으로서, 백관은 왕의 말씀을 명령으로 삼아 받들며 공경합니다. 그런데 왕이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신하들은 명령을 받을 곳이 없게 됩니다. 왕은 작성한 문서로 고하였다.

"나로 하여금 천하를 바로잡게 하였으나, 나는 덕이 뛰어나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여 말하지 않았다. 삼가 묵묵히 도()를 생각하고 있는데, 꿈에서 상제(上帝)께서 나에게 훌륭한 보필자를 내려 주셨다. 그가 나를 대신하여 말을 할 것이다."

무정(武丁)은 상()나라의 22() 왕으로 19대 왕인 문성왕(文成王) 반경(盤庚)의 아우인 21대 왕 혜왕(惠王) 소을(小乙)의 아들로 53년간 재위하였는데 후세에 성천자(聖天子)로 불리는 분입니다.

19대 왕인 반경(盤庚, 文成王 )은 상나라를 중흥시킨 임금으로 도읍을 은()으로 옮긴 분입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상()나라를 은()나라라고도 불렀던 것입니다. 반경이 재위 28년 만에 죽자 그의 아우 소신(小辛, 章王)이 왕위를 이었고, 그 뒤를 다시 소신(小辛)의 동생인 소을(小乙, 惠王)이 왕위를 이었지만 별 치적이 없이 죽자 그의 아들인 무정(武丁)이 왕위에 오른 것입니다.

 

상나라의 명재상 부열(傅說)

이어 왕은 꿈에 본 그 모습을 떠올려 신하로 하여금 그 모습을 그리게 한 다음 천하를 두루 살펴 찾게 하였다. 이때 부열은 부암(傅巖)의 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모양이 꿈에 본 이와 비슷하였다. 이에 부열을 재상으로 삼아 왕은 그를 좌우에 두셨다. 왕은 부열에게 말씀하셨다.

"조석으로 좋은 말씀을 들려주어 나의 덕치를 보좌하도록 해 주시오.

만약 내가 쇠라면 그대는 숫돌이 되고,

만일 내가 큰 내를 건너려 할 때는 그대는 배와 노가 되어 주시오.

만약 어느 해에 큰 가뭄이 든다면 그대는 단비가 되어 주시오.

그대의 마음을 열어 나의 마음을 비옥하게 해 주시오.

만약 간언이라는 약의 효과가 강하지 않으면 그 질병은 치유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맨발로 걸으면서 땅을 잘 살피지 않으면 그 발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오."

어느 날 밤 무정은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죄수처럼 생긴 한 노인을 보았는데 등은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굽어져 있었는데, 몸은 거친 옷을 입고 있었고 팔은 밧줄에 묶인 채 허리를 굽히고 힘들게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정은 그 사람을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자 무정은 형형한 눈빛과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얼굴이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와 천하의 일을 이야기 해 보니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정을 감동시키기에 족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물어보려는 순간 꿈이 깨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정(武丁)은 꿈에 본 부열(傅說)을 찾아내어 재상으로 삼았으니, 부열이 꿈에서 얼마나 무정을 감동시켰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이 바로 천자문의 열감무정(說感武丁)입니다.

이와 같이 부열(傅說)은 상()나라의 고종(高宗) 즉 무정(武丁)이 꿈에 본 성인(聖人)으로, 부암(傅巖) 들에서 죄인(罪人)의 노역(勞役)을 대신 해 주고 먹고 살다가 무정(武丁)에게 발탁되어, 그를 도와 나라를 크게 중흥시키니, 무정이 부()라는 성()을 내리고 이름을 열()이라 하였다 합니다.

"그대 및 그대의 동료들과는 한마음이 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여 나를 보좌해 주오.

동료들로 하여금 선왕들을 따르게 하고 우리들의 옛 임금을 좇도록 하여 억조창생을 편안케 해 주오. 아아, 삼가 나의 명을 받들어 끝까지 힘써 주시오."

부열이 임금에게 대답했다.

"나무가 먹줄을 따르면 바르게 되고[木從繩則正],

임금이 충간을 따르면 성군이 됩니다.[后從諫則聖]

임금께서 능히 성군이 될 수 있다면 신하는 명하지 않아도 받들 것이니, 그 누가 감히 훌륭하신 왕의 말씀을 받들고 따르지 않겠습니까?"

부열(傅說)을 등용한 무정(武丁)은 부열의 간언을 진정으로 받아들여 쇠약해진 상나라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 놓아 중흥시킨 성천자(聖天子)가 되었던 것입니다.

부열이 위에서 말한 목종승즉정(木從繩則正)과 후종간즉성(后從諫則聖)은 너무나 유명한 말이어서 고래(古來)로 뜻있는 신하들은 임금에게 간했던 것입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사극 <정도전>에도 이 말이 나왔었지요. 효경(孝經)》『간쟁장(諫爭章)에 이르기를, "천자에게 쟁신(爭臣) 일곱 명만 있으면 비록 무도한 천자가 있더라도 천하를 잃지 않는다.(天子有爭臣七人 雖無道 不失其天下)"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칠인(七人)은 누구이겠습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을 보좌하는 총리와 장관급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현재 인물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보좌할 총리로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발탁하는 이마다 국가관에 문제가 있거나 온간 비리로 점철되어 있고, 사고가 편향되어 국민을 화합으로 이끌 만한 인재가 없습니다. 아니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찾지 않고 오로지 정권과 당략만을 위하여 찾고, 충간을 할 바른 인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말을 따를 사람만 찾으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탕왕(湯王)은 반계(磻溪)에서 이윤(伊尹)을 얻었고, 문왕(文王)은 위수(渭水)에서 태공망(太公望)을 얻었으며, 무정(武丁)은 부암(傅巖)에서 부열(傅說)을 얻었습니다. 이들은 임금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올바른 도리를 간했고 임금은 이를 받아들였으므로, 정사가 잘 이루어져 위업을 달성했던 것이니 현명한 이를 얻는다는 것은 나라의 큰 복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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