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字文 工夫

晉楚更覇 趙魏困橫

bindol 2020. 11. 13. 15:49

晉楚更覇 趙魏困橫

 

本文

晉楚更覇 趙魏困橫 진초경패 조위곤횡

나라와 나라는 번갈아 覇者 되고

나라와 나라는 連橫說에 곤란했다.

 

訓音

진나라 진 초나라 초 고칠 경 으뜸 패

조나라 조 위나라 위 곤할 곤 가로 횡

 

解說

조위곤횡(趙魏困橫) ()나라와 위()나라는 연횡설(連橫說)에 곤란했다.

지난번에는 춘추 시대(春秋時代)의 두 번째 패자(覇者)인 진문공(晉文公)과 세 번째 패자인 초장왕(楚莊王)에 대한 이야기인 진초경패(晉楚更覇)를 공부했는데, 이번에는 시대를 더 내려와 양육강식(弱肉强食)의 전쟁 시대인 전국 시대(戰國時代)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국 시대에는 이른 바 전국칠웅(戰國七雄)이 할거(割據)하며 어떻게 하면 강대국에 대항하여 살아남는가 하는 것이 화두였습니다. 전국칠웅 중 크게 국력이 강해진 진()이 강자로 등장하자 나머지 6국은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활발한 외교정책을 벌이게 됩니다.

이에 활동한 인물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유명한데 그들은 대표적인 유세가(遊說家)로 이름 높았습니다. 소위 소진(蘇秦)의 합종책(合縱策)과 장의(張儀)의 연횡책(連橫策)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자원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는 주() + ()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작게 하다, 오무리다'의 뜻으로 나아감이 더딤을 뜻합니다. 본뜻은 '걸어가는 것이 느린 모양'을 나타냅니다.

여기서는 '나라 이름'을 뜻합니다. 춘추 전국시대에 진()나라를 삼분하여 세운 조나라를 가리킵니다.

()는 귀() + ()의 형성자(形聲字), 본뜻은 '고대(高大)'의 뜻입니다. 여기서는 나라이름을 뜻합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나라'를 말합니다.

()은 목() + ()의 회의자(會意字)입니다. 나무가 울타리 안에 있어 자라지 못하고, '곤란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은 목() + ()의 형성자(形聲字), ()은 몸에 옆으로 차는 띠구슬을 뜻해서, ''의 뜻도 나타내며, 또 문을 닫기 위한 가로대, 빗장의 뜻에서 '보통, '의 뜻을 보입니다. 그래서 '가로, 가로지르다, 가로놓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조위곤횡(趙魏困橫)이란 '()나라와 위()나라는 연횡설(連橫說)에 곤란했다.'는 이야깁니다. 왜 곤란했을까요?

앞서 공부한 진초경패(晉楚更覇)는 동주 시대(東周時代)의 춘추 시대의 패자(覇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동주 시대(東周時代)는 춘추 시대(春秋時代 B.C 770~B.C 453)와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53~B.C 221)로 나뉩니다. 춘추 시대는 제후들이 주()왕실의 천자(天子)를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쳐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의 명분과 국통(國統)이 끊어진 나라의 종묘(宗廟)와 국통을 이어 주고 멸망한 소국(小國)들을 구원하여 복국(復國)시켜 주는 계절존망(繼絶存亡)의 원칙을 내세움으로써 천하의 안녕과 봉건제도 하에서의 강상(綱常)과 예악(禮樂)의 질서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시대는 주왕실에 대한 충성도가 더욱 약해지고 저마다 왕()을 참칭하게 되면서 약소국을 병탄해 나가는 시기입니다.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시대로, ()()()()()()() 등 일곱 나라가 대표적입니다.

이를 일러 전국칠웅(全國七雄)이라 합니다. 전국시대 중에 이름 뿐이던 주()왕실이 진()나라에 몰락하므로써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전국시대는 칠웅 중 세력이 가장 강한 진()이 모든 나라를 정복함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진시황제(秦始皇帝)가 전국을 통일하여 통일제국(B.C 221~B.C 206)을 세웠는데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전국 시대(戰國時代. B.C 453~B.C 221)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알아보겠습니다.

춘추 시대에 두 번째 패권국이었던 진()나라는 많은 세월이 흐르자 패자에서 물러난 것은 물론 춘추 시대 말에 이르면, 군주가 경대부(卿大夫)의 눈치를 보는 나라로 전락하게 됩니다. 원래 지씨(知氏)조씨(趙氏)한씨(韓氏)위씨(魏氏)순씨(荀氏)범씨(范氏) 등 육경(六卿)이 있었는데, 세력 다툼에서 순씨범씨는 세력에서 밀려나고, 지씨조씨한씨위씨 사가(四家)가 국권을 좌지우지 했습니다. 이때 사가 중 지씨 가문의 지백(知伯)인 지요(知瑤. 知襄子)가 정승으로 있었는데, 당시의 군주인 제33대 진출공(晉出公)이 제()와 노()나라에 밀사를 파견하여 사가(四家)를 처지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실권자들인 제의 전씨(田氏)와 노의 삼환(三桓)이 지백인 지요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지백이 대노하여 출공(出公)을 제나라로 쫓아내고 제34대 군주인 애공(哀公 B.C 456~B.C 439 재위)을 옹립하고 국정을 휘두르게 됩니다.

지요는 내심 3가를 멸문시키고 진()을 독식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가 월()나라를 정복한다는 미명 하에 한씨의 한호(韓虎. 韓康子) 위씨의 위구(魏駒. 魏桓子)의 땅 100리를 빼앗자, 조씨의 조맹(趙孟 일명 無恤. 趙襄子)만이 불복하게 됩니다. 지요는 한씨와 위씨와 더불어 조씨를 공격했지만, 조양자는 백성과 힘을 합쳐 진양성(晉陽城)을 방어하는 한편, 계책을 써 한강자와 위양자를 설득해 그들과 손을 잡고 지요를 죽이고 지씨 가문을 멸문(滅門)시키기에 이릅니다. 그러고 난 후 한조 삼가는 진나라를 공평하게 삼분(三分)하게 됩니다. 이것이 B.C 453년의 일입니다. 이들은 각기 단일 국가로 독립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삼진(三晉)이 성립된 것입니다. 이것을 기점으로 하여 춘추 시대(春秋時代)는 막을 내리고 전국 시대(戰國時代)가 시작 된 것입니다. 힘이 있으면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각 나라들은 작은 나라들을 쳐서 멸국(滅國)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3(三家)는 각자 국가 통치체제를 갖추어 제후 아닌 제후로 행세했는데, 그로부터 50년 뒤인 B.C 403년에는 그 아들손자들인 한건(韓虔. 景侯 B.C 408~B.C 400재위), 위사(魏斯 文侯 : B.C 445~B.C 396 재위), 조적(趙籍. 烈侯 : B.C 408~B.C 387 재위)이 주위열왕(周威烈王 B.C 425~B.C 402 재위)으로부터 제후 지위를 정식으로 승인받게 되었습니다. 제후는 원래 주왕실에서 봉하는 것인데 힘 있는 자가 왕실을 위협하여 승인하게 되는 형국이 되었으니 주왕실은 권위를 완전히 잃은 것입니다.

일설에는 B.C 403년을 전국 시대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B.C 453년을 전국시대의 기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시대가 도래하자 힘없는 국가는 강자에게 멸국 당하게 되는데, 이때 강대국으로 꼽히는 나라로 진()()()()()()() 등 일곱 나라가 있었으니 이를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합니다. 이 칠웅 간에도 서로 싸워 뺏고 뺏기는 전쟁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천자문의 조위곤횡(趙魏困橫)을 설명할 차례입니다. 앞서 설명이 길어습니다만 설명이 더 필요해서 부득이 더 이어 봅니다. ^^

전국 시대 중기 이후는 열국간의 전쟁이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전국칠웅(戰國七雄) 중에 진()의 세력이 크게 신장 됨에 따라 나머지 6국은 진에 대항하기 위하여 활발한 외교전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합종책(合縱策)과 연횡책(連橫策)이었습니다.

()나라는 중원(中原)에서 서쪽에 위치하여 열국 중에서도 다소 소외 되었었는데, 진효공(秦孝公 B.C 361~B.C 338 재위)이 상앙(商鞅 ?~ B.C 338)을 등용하여 그의 부국강병책인 상앙변법(商鞅變法)을 받아들여 추진한 결과 폭풍성장을 하게 됩니다. 1차 변법의 시행은 B.C 359년 혹은 B.C 356에 시행되었는데, 그 골자는 호적제를 정비하고 십오제(什伍制)연좌제(連坐制)를 만들어 백성들을 10(), 5가 단위로 이웃간에 상호 감시하고 위법 행위를 고발하게 하여 통제했던 것입니다. 또한 군공수작제(軍功授爵制)라 하여 군사 공적에 따라 벼슬을 가감하는 제도를 시행하여 전쟁에서 무공(武功)을 세우도록 적극 권장하는 정책을 쓴 것입니다. 이를 위해 20등급의 작제(爵制)를 만들어 놓고, 예를 들면 적병의 수급을 하나 끊어 오면 1등급을 승급시켜주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자 진나라의 전투력이 급속도로 커지게 되었습니다. 또 중농억상책(重農抑商策)을 써 농업과 양잠업 등을 장려하고 상업은 철저히 감독 통제하였습니다.

2차 변법은 B.C 350년에 실시했는데, 골자는 분가(分家)정책, 함양(咸陽)으로 천도, 현제(縣制), 토지개혁, 부세제도를 확립함으로써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달성했던 것입니다. 이 변법은 가혹하기도 하여 원성도 자자하였고 상앙도 자기가 만든 법에 걸려 들어 죽음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진은 서쪽 변방의 이류국가에서 중원 전체를 위협하는 무서운 국가로 성장하여 제()()()()()()6국을 불안에 떨게 했습니다. 이에 어떻게 해야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 큰 화두였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소진(蘇秦 ?~?)의 합종책(合縱策)과 장의(張儀 ?~B.C 309)의 연횡책(連橫策)입니다.

합종책(合縱策)은 진()의 동쪽에 있는 여섯 나라가 북쪽의 연()에서 남쪽의 초()에 이르기까지 종()으로 연합해 동맹(同盟)을 맺어 진나라를 물리쳐야 한다는 정책론입니다. 아무리 막강한 진나라라고 해도 6국이 합종(合縱)하여 대항한다면 물리칠 수 있다는 설()입니다. 이를 위해 소진은 각나라를 돌면서 유세했던 것입니다. 이에 6국의 군주들은 열렬히 환영하고 호응했습니다.

연횡책(連橫策)6국이 각각 개별적으로 진()과 동맹함으로써 다른 제후국을 제압하고 자국에 대한 진의 공격을 유보시키려는 내용의 정책론입니다. 이는 장의(張儀)의 주장으로 합종으로 진나라에 대항하지 말고 각자 진나라와 동맹을 맺어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역설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진()과 인접한 조()나라와 위()나라는 상대적 약소국으로 합종설(合縱說)과 연횡설(連橫說)에 전전긍긍 곤란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조위곤횡(趙魏困橫)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비단 조와 위나라만 예를 들었지만 나머지 4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합종책(合縱策)을 주장하고 성립시킨 사람은 주()나라 낙양(洛陽) 출신의 유세가(遊說家) 소진(蘇秦)인데, 그의 노력으로 B.C 333년 무렵에 최초의 6국 합종이 체결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각국의 군주들의 환영을 받았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해 관계가 각기 다르고 국내외 사정도 달랐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B.C 318년 무렵에 와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진은 6국의 비난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연횡책(連橫策)을 연형책(連衡策)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주장한 사람은 위()나라 출신의 정치가인 장의(張儀)인데 그는 각국을 돌아다니며 진나라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합종책을 깨트렸습니다. 그는 진()나라에서 재상이 되었고 진이 촉()을 평정하고 위()나라 일부를 차지하는데 공을 세우기도 해서 진의 혜문왕(惠文王 B.C 337~B.C 311)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진왕과 짜고 위나라로 가서 재상이 되었는데 그는 위왕에게 진을 섬겨야 한다고 설득했으나 위왕이 말을 듣지 않자 몰래 진왕에게 연락해 공격하도록 하여 크게 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듬해엔 제()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였고, 진은 다시 위를 공격할 목적으로 한()나라를 쳐 8만 명을 몰살시키니, 이에 장의는 위왕을 설득해 합종책을 깨고 연횡책을 쓰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곧 진을 배반하고 합종책을 쓰다 진의 위협을 받자 다시 연횡책을 쓰는 등 오락가락 곤경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는 차례로 각국을 돌아다니며 진을 섬기도록 하여 화친하게 만들었습니다. 연횡책은 자체가 성격상 합종보다 훨씬 더 큰 안정성, 효율성을 지니는데다 장의의 뛰어난 능력과 수완 덕분에 계속 성공을 거둠으로써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는데 기본적인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종횡가(縱橫家)인 소진과 장의의 세 치 혀에 6국은 합종책과 연횡책을 오락가락하며 곤경을 겪게 되었고, 진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끝내 진시황(秦始皇) 때에 이르러 전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B.C 221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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