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字文 工夫

宣威沙漠 馳譽丹靑

bindol 2020. 11. 13. 15:57

宣威沙漠 馳譽丹靑

 

베풀 선 위엄 위 모래 사 아득할 막

宣威沙漠(선위사막):명장(名將)들의 위엄(威嚴)은 사막(沙漠)까지 떨쳤으며,

달릴 치 기릴 예 붉을 단 푸를 청

馳譽丹靑(치예단청) : 그들의 명예(名譽)를 단청(丹靑)하여 드날렸다.

 

76. 宣威沙漠 馳譽丹靑(선위사막 치예단청)

: 名將(명장)은 위엄을 사막에까지 떨쳤는데, 그 명예는 말 달리듯 그림으로써 그려져 후세에 전했다.

[()나라의 宣帝(선제)11명의 功臣(공신)을 공의 대소에 따라 순서대로 麒麟閣(기린각)에 그리게 하고, 後漢(후한)明帝(명제)는 공신 32명을 남궁의 雲臺(운대)에 그리게 하니, 그들의 명성은 마치 말이 달리는 것같이 丹靑(단청)으로 그려져 후세에 전했다는 뜻이다.]

선위사막(宣威沙漠)"명장(名將)들의 위엄(威嚴)이 멀리 사막(沙漠)까지 떨쳤다"는 말입니다.

선위(宣威)'위엄을 떨치다'는 뜻이고, 사막(沙漠)'아득히 넓은 모래벌판'을 뜻합니다.

여기서 명장(名將)이란 앞서 소개한 명장들인 진()나라의 백기(白起)와 왕전(王翦), ()나라의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을 말합니다.

이들의 명성은 멀리 사막까지 알려져 위세를 떨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막(沙漠)은 중국의 변방 밖 흉노(匈奴)를 통과하는 땅입니다. 중국 북서부의 몽고(蒙古)와 신강성(新疆省) 쪽의 고비 사막을 가리킵니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고 이 흉노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축조했고, 한무제(漢武帝)는 흉노와 정략결혼을 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흉노들을 상대로 싸워 앞서 거론한 명장들은 위명(威名)을 떨쳤던 것입니다.

치예단청(馳譽丹靑)"그들의 명예(名譽)를 단청(丹靑)하여 드날렸다"는 말입니다.

치예(馳譽)'명예를 말이 달리듯이 드날리다', '명성을 마치 말이 달리듯이 전하게 하다'의 뜻입니다.

단청(丹靑)이란 일반적으로 궁궐이나 사찰 전각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린 그림이나 무늬'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뜻합니다.

치예단청(馳譽丹靑)은 위에서 밝힌 선위사막(宣威沙漠)한 명장(名將)들의 공훈(功勳)을 기려서, 화공(畵工)으로 하여금 그들의 모습을 그리게 하여 그 그림을 전각에 걸어서, 그들의 명예(名譽)를 드날리게 하며, 그들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도록 한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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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威沙漠 馳譽丹靑

 

名將들의 威嚴沙漠까지 떨쳤으며

그들의 名譽丹靑하여 드날렸다.

 

訓音

베풀 선 위엄 위 모래 사 사막 막

달릴 치 기릴 예 붉을 단 푸를 청

 

解說

지난 장에서는 기전파목 용군최정(起翦頗牧 用軍最精)을 공부하면서 전국시대에서 활약하여 청사(靑史)에 이름을 드날린 명장들에 대하여 공부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들의 위명(威名)이 멀리 사막에까지 퍼졌던 사실(史實)과 국가에서는 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도상(圖象)을 그려 전각에 걸어 놓고 후세에 전하려 한 사실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宣威沙漠(선위사막)

명장(名將)들의 위엄(威嚴)은 사막(沙漠)까지 떨쳤으며

()은 면() + ()의 형성자(形聲字), '()''고루 펴다'의 뜻입니다. 천자(天子)가 신하에게 자신의 의사(意思)를 말해 널리 알리는 방()의 뜻을 나타내며, 일반적으로, '말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베풀다, 펴다, 밝히다'의 뜻으로 쓰입니다.

()는 녀() + ()의 회의자(會意字), '()'은 큰 도끼를 본뜬 모양입니다. 도끼로 여자를 위협하는 모양에서, '으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위엄, 거동'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는 수() + ()의 회의자(會意字), 물속의 작은, '모래'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는 '물이 적으면 모래가 보인다.'하여 '모래'의 뜻을 나타냅니다.

()은 수() + ()의 형성자(形聲字), '()''없다'의 뜻이니, 물이 없는 벌판, '사막'의 뜻을 나타냅니다.

선위사막(宣威沙漠)은 명장(名將)들의 위엄(威嚴)이 멀리 사막(沙漠)까지 떨쳤다는 뜻입니다. 선위(宣威)'위엄을 떨치다'는 뜻이고, 사막(沙漠)은 아득히 넓은 모래벌판을 말합니다.

여기서 명장(名將)이란 앞서 소개한 명장들인 진()나라의 백기(白起)와 왕전(王翦), ()나라의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을 말합니다. 이들의 명성은 멀리 사막까지 알려져 위세를 떨쳤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들 뿐만 아니라 한()나라의 곽거병(霍去病)이광(李光)위청(衛靑) 등은 흉노(匈奴)와의 싸움에서 이름을 날렸고, 소무(蘇武)와 장건(張騫) 등은 서역으로 들어가 흉노를 무찔러 사막에까지 위명(威名)을 날렸습니다.

사막(沙漠)은 중국의 변방 밖 흉노(匈奴)를 통과하는 땅입니다. 중국 북서부의 몽고(蒙古)와 신강성(新疆省) 쪽의 고비 사막을 가리킵니다. 흉노(匈奴)는 중국의 북방 오랑캐입니다. 중국은 이 흉노 때문에 늘 골치를 썩었습니다. 이들은 아주 호전적이어서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면서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초토화되었던 것이니 중국은 흉노에 대한 방책에 골몰했던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있어서 진()나라는 서쪽에, ()나라는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사막을 접하고 있었고, 그 서북쪽 변경 밖에는 유목민족인 흉노를 비롯한 북방 오랑캐[北狄]들이 자주 국경을 침탈했던 것입니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고 이 흉노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축조했고, 한무제(漢武帝)는 흉노를 달래기 위해 정략결혼도 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흉노들을 상대로 싸워 앞서 거론한 명장들은 위명(威名)을 떨쳤던 것입니다.

馳譽丹靑(치예단청) 그들의 명예(名譽)를 단청(丹靑)하여 드날렸다.

()는 마() + ()의 형성자(形聲字), '()''넘실거리게 하다'의 뜻이니, '말이 등을 넘실거리게 하면서 빨리 달리다.'의 뜻입니다.

()는 언() + ()의 형성자(形聲字), '()''손을 한데 모아 물건을 올리다'의 뜻이니, '말로써 사람을 들어 올리다, 칭찬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 뜻이 '명예'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은 상형자(象形字), 단사(丹砂)를 채굴하는 우물을 본뜬 것으로, '붉은빛'의 뜻을 나타냅니다.

()은 단() + ()의 형성자(形聲字), '()''푸른 풀이 나다'의 뜻이고, '()''우물 난간 속의 물감'의 뜻입니다. 푸른 풀빛의 물감의 뜻에서, '푸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치예단청(馳譽丹靑)은 그들의 명예(名譽)를 단청(丹靑)하여 드날렸다는 뜻입니다.

치예(馳譽)'명예를 말이 달리듯이 드날리다, 명성을 마치 말이 달리듯이 전하게 하다'의 뜻입니다. 단청(丹靑)은 도상(圖象)을 말합니다. 도상(圖象)이란 화상(畵象)이라고도 하는데 그림으로 그린 사람의 모습을 말합니다. 단청(丹靑)이란 일반적으로 궁궐이나 사찰 전각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린 그림이나 무늬를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뜻합니다.

치예단청(馳譽丹靑)은 위에서 밝힌 선위사막(宣威沙漠)한 명장(名將)들의 공훈(功勳)을 기려, 화공(畵工)으로 하여금 그들의 모습을 그리게 하여 그 그림을 전각에 걸어서 그들의 명예(名譽)를 드날리는 한편 그들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도록 한 것을 말합니다.

전한(前漢)의 선제(宣帝 B.C 74~B.C 49)는 공신들의 도상(圖象)을 무제(武帝 B.C140~B.C 87)가 세운 기린각(麒麟閣)에 걸도록 하였습니다. 기린각(麒麟閣)은 한()나라의 정전(正殿)인 미앙궁(未央宮) 안에 있는데, 한무제(漢武帝)가 기린(麒麟)을 포획한 기념으로 세운 전각입니다. 여기서 기린은 아프리카에 있는 키 큰 기린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수(靈獸) 중의 하나인 상상의 동물로 알려진 기린(麒麟)을 말합니다.

선제(宣帝)는 이 기린각에 곽광(霍光)장안세(張安世)소무(蘇武) 등 공신 11명의 화상(畵象)을 그리게 하여 그들의 공적을 기렸습니다. 그런데 이 기린각에는 선위사막(宣威沙漠)한 명장(名將)들의 도상 만이 아니고, ()나라 무제(武帝)와 선제(宣帝) 때 공훈을 세운 공신들의 도상입니다. 이들은 대개 문신(文臣)인 명신(名臣)들로 이들의 공훈을 기리며 후세에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A.D 57~75)는 남궁운대(南宮雲臺)에 전세(前世)의 공신(功臣)들을 기리기 위하여 28명의 장수(將帥)들을 그려서 걸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궁운대는 공신(功臣)과 명장(名將)들을 기념하는 장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 ()나라 태종(太宗 A.D 599~649)은 능연각(凌烟閣)에 당나라 숙종(肅宗) 때의 명장인 곽자의(郭子儀) 등 공신(功臣) 명장(名將) 24()의 도상(圖象)을 그려 걸었다고 합니다. 능연각(凌烟閣)은 당태종 때 있었던 누대(樓臺)입니다.

이와 같이 공신(功臣)이나 명장(名將)들의 도상(圖象)을 그리는 것을 모두 단청(丹靑)이라 했습니다. 이는 국가에서 그들의 공적을 치하하여 명성을 드날림과 동시에 그 공적을 후대에 전하여 본보기로 삼고자 하는데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치예단청(馳譽丹靑)이라 했으니 이들의 명성은 달리는 말처럼 후세에 전해졌던 것입니다.

전각이나 누대에 초상(肖象)이 걸리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훈이 많아 명예가 높아지면 권력(權力)과 부()가 자연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권력과 부에 탐닉하여 더 가지려고 하고 권력을 남용하다가 하루아침에 멸족(滅族)의 비운을 겪는 사례도 많았으니, 무릇 공훈이 많아 명예가 높아지면 자중자애(自重自愛)해야 할 것입니다.

옛 말씀에 이르기를, 지족불욕(知足不辱)이요 지지불태(知止不殆)이라 하였으니, 만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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