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字文 工夫

嶽宗恒岱 禪主云亭

bindol 2020. 11. 13. 16:03

嶽宗恒岱 禪主云亭

 

嶽宗恒岱 禪主云亭

 

山嶽恒山岱山이 으뜸이요

封禪云云山亭亭山이 근본이다.

 

訓音

큰산 악 마루 종 항상 항 대산 대

봉선 선 임금 주 이를 운 정자 정

 

解說

동악태산(東岳泰山) 중국 유광(劉曠) 2003年 作

선주운정(禪主云亭) 봉선(封禪)엔 운운산(云云山)과 정정산(亭亭山)이 근본이다.

()은 시() + ()의 형성자(形聲字), '()''()'과 통하여, 평탄한 대지(臺地)의 뜻입니다. '()을 설치하여 하늘에 제사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임금 자리를 물려주다'의 뜻으로 쓰입니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후에는 '참선하다'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는 상형자(象形字), 등잔 접시 위에 불이 타고 있는 모양을 본떴습니다. '()'의 원자(原字)입니다. 불꽃이 정지(靜止)된 채 타고 있는 뜻에서, ()하여 '일정 기간 동안 머물러 책임을 지는 자, 당자, 주인' 등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는 왕() + ()의 형성자(形聲字)로 보아, '()'은 촉대(燭臺)를 뜻하고, '()'는 그 촛대 위에 타고 있는 불꽃을 나타냄과 동시에 음()을 나태냅니다. 밤의 등불은 한 집 가족의 중심 위치를 차지한다는 데서 '주인'이란 뜻을 나타냅니다.

()은 상형자(象形字),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모양을 본뜬 글자입니다. ()의 원자(原字)인데, 가차(假借)하여, '말하다, 이에'의 뜻을 나타냅니다.

()은 고() + ()의 형성자(形聲字), '()'는 높은 건물의 뜻이고, '()'은 못을 쳐 박아 안정(安定)시킴의 뜻입니다. 사람들이 자리 잡고 앉아 편히 쉬는 장소, '정자'의 뜻을 나타냅니다.

선주운정(禪主云亭)'봉선(封禪)엔 운운산(云云山)과 정정산(亭亭山)이 근본이다.' 라는 뜻입니다. 또 봉선엔 운운산과 정정산이 주()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은 흔히 '좌선(坐禪) '으로 알고 있지만 원래는 '()을 설치하여 하늘에 제사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를 봉선(封禪)이라 합니다. 봉선(封禪)이란 고대의 제왕(帝王)들이 태산(泰山)에 가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행하던 의식으로, ()은 태산 위에 흙을 높이 쌓아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말하여, ()은 태산 아래의 양보산(梁父山) 위에 땅을 판판하게 골라 제터[]를 만들어 땅에 제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선()은 임금이 덕이 있는 어진 이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다.'의 의미로도 쓰입니다. 이를 선위(禪位), 혹은 선양(禪讓)이라 합니다.

그리고 선()은 또 참선(參禪)을 뜻하는 글자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마음을 고요히 하여 진리를 직관(直觀) 하는 것을 선()이라 하는데, 이는 범어 디야나(dhyāna), 선나(禪那)로 음역(音譯)한 말입니다. 이 선나(禪那)를 줄여서 선()이라 했습니다. '정려(靜慮), 사유수(思惟修), ()으로 의역(意譯)합니다.

이렇듯 대략 크게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봉선(封禪)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는 원래 '촉대에서 불이 타오르다'의 뜻이나 여기서는 '근본이다, ()가 되다, 주로 하다'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은 어조사로 쓰이는 글자인데 여기서는 운운산(云云山)을 말합니다. 운운산은 태산(泰山) 아래의 작은 산입니다.

()은 경치 좋은 곳에 놀려고 지은 집인 '정자(亭子)'를 뜻하나 여기서는 '정정산(亭亭山)을 뜻합니다. 정정산도 태산 아래에 있는 작은 산입니다.

운운산(云云山)'정정산(亭亭山)은 고대에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봉선(封禪)의 제사를 지내던 산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고대 임금들은 제위(帝位)에 오르거나 나라에 큰 일을 앞두거나 전쟁에서 승리하여 평정한 뒤에는 명산(名山)에 나아가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그 대표적인 산이 태산(泰山 일명 岱山)이었습니다. 태산 아래 운운산(云云山)과 정정산(亭亭山)이 있는데 이곳이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봉선(封禪)한 장소입니다. 그런 만큼 운운산(云云山)'정정산(亭亭山)은 봉선(封禪)의 자리로 근본이요, 가장 소중하고 주()된 곳입니다.

사기(史記)》『봉선서(封禪書)에는 고대의 임금들이 봉선(封禪)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목공(秦穆公) 9, 제환공(齊桓公)은 패주(覇主)가 되어 규구(葵丘)에 제후들을 모아놓고 봉선(封禪)의 일을 의논했다.

관중(管仲)이 말했다.

"고대에 태산(泰山)과 양보산(梁父山)에서 봉선하던 제후는 72명이나 되나,

신이 기억하는 사람은 12명뿐이옵니다.

옛날 무회씨(無懷氏)가 태산과 운운산(云云山)에서 봉선했으며,

복희씨(伏羲氏)가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신농(神農)은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염제(炎帝)는 태산과 정정산(亭亭山) 봉선했으며,

황제(黃帝)는 태산과 정정산에서 봉선했으며,

전욱(顓頊)은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제곡(帝嚳)도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도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의 순()도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나라의 우()는 태산과 회계산(會稽山)에서 봉선했으며,

()나라의 탕()은 태산과 운운산에서 봉선했으며,

()나라의 성왕(成王)은 태산과 두수산(杜首山)에서 봉선했는데,

이들은 모두 천명을 받아 제왕이 된 후에서야 비로소 봉선할 수 있었습니다."

봉선은 고대의 임금들이 아주 중시한 행사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봉선의식이 흐려지는 경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기(史記)》『봉선서(封禪書)에 이르기를

자고로 천명을 받아 제왕이 된 자가 어찌 봉선(封禪)을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늘의 감응과 길조가 없으면 서둘러 봉선대전을 행했으며, 하늘의 감응과 길조가 나타났음을 보고도 태산(泰山)에 가지 않은 천자는 여지껏 없었다. 그러나 어떤 자는 비록 천명을 받아 제왕이 되었으나 치세의 업적을 이루지 못했고, 어떤 자는 몸은 비록 양보산(梁父山)에 갔으나 도덕과 봉선의 성대한 제례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어떤 자는 도덕은 갖추어졌으되 봉선을 행할 틈이 없었다. 이 때문에 봉선대전이 극히 드물게 되었다.

이는봉선서(封禪書)첫머리에 나오는 글입니다.

악종항대 선주운정(嶽宗恒岱 禪主云亭)을 통해 고대 임금들이 민정을 살피기 위해 순행(巡行)할 때는 명산(名山)을 찾아 목욕재계(沐浴齋戒)한 후 하늘과 땅에 제사를 드렸던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한 제위(帝位)에 오르거나 국가의 중대사가 있었을 때는 태산을 비롯한 명산에 나아가 천지(天地)에 이를 고하는 제사를 봉행하였는데, 이런 봉선의식(封禪儀式)을 통해 예()를 다지고 민심을 하나로 모아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도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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