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俶載南畝 我藝黍稷
【本文】
俶載南畝 我藝黍稷 숙재남묘 아예서직
봄이 되면 남쪽 밭서 농사를 시작하니
이때 나는 찰기장과 메기장을 심는다.
【訓音】
俶 비로소 숙 載 실을 재 南 남녘 남 畝 이랑 묘
我 나 아 藝 재주 예 黍 기장 서 稷 기장 직
【解說】
앞 절에서 치본어농 무자가색 (治本於農 務玆稼穡)을 들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농사에 있음을 밝히고 이에 곡식을 심고 거두는 일에 힘써야 한다 하였습니다.
이번 절에서는 '숙재남묘 아예서직 (俶載南畝 我藝黍稷)'이라는 구절을 통하여 구체적인 농사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선 글자의 자원(字源)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숙재남묘(俶載南畝) 봄이 되면 남쪽 밭서 농사를 시작하니
숙(俶)은 인(人) + 숙(叔)의 형성자(形聲字)로, '숙(叔)'은 '마음 아파하다, 애도하다'의 뜻입니다. 남의 불행을 마음 아파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착하다, 인정 많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본뜻은 숙(淑)과 통하여 '착함'을 뜻하는데 시(始)의 뜻인 '비로소, 처음, 시작함'의 뜻을 나타냅니다.
《설문(說文)》에 숙선야(俶善也)라 했으니, '숙(俶)'은 '착함'을 뜻합니다. 또 숙일왈시야(俶一曰始也)라 했으니, '숙(俶)'은 '시작'을 뜻합니다.
재(載)는 차(車) + 재[載-車]의 형성자(形聲字)로, '재[載-車]'는 '끊다'의 뜻입니다. 갑골문(甲骨文)에서는 식(食) + '재[載-車] 의 형성자(形聲字)로, 특히 식사 재료를 가지런히 잘라 식탁에 올리다의 뜻을 나타내었으나, 일반적으로 '싣다'의 뜻을 나타내게 됨에 따라, '차(車)'의 의부(意符)가 덧붙여졌습니다.
재(載)의 본뜻은 '타다'인데 나중에 《집운(集韻)》에서 재사야(載事也)라 했으니, '재(載)'는 일하다'의 뜻으로 변했습니다.
남(南)은 갑골문(甲骨文)에서 철(屮) + 입(入) + 범(凡)의 회의자(會意字)로, '철(屮)'은 '풀의 상형(象形)'이고, '입(入)'은 '들어가다'의 뜻이며, '범(凡)'은 '바람'의 뜻입니다. 봄이 되어 살그머니 스며들어 초목이 싹트도록 촉구하는 남풍의 뜻에서, '남쪽'의 뜻을 나타냅니다. 일설에는, '남(南)'의 윗부분이 '고(鼓)'요소 글자와 공통되는 점이 있음을 근거로 하여, 남방에서 쓰였던 악기의 상형에서, '남쪽'을 뜻을 나타냈다고도 합니다.
묘(畝)는 전문(篆文)은 전(田) + 매(每)의 형성자(形聲字)로, '매(每)'는 젖통이 있는 여성의 상형(象形)입니다. 논밭 안의 젖통과 같이 불룩한 '이랑'의 뜻을 나타냅니다. 묘(畝)는 본음(本音)이 '무'입니다. 본뜻은 100보(步) 또는 240보의 밭면적을 가리킵니다.
숙재남묘(俶載南畝)는 봄이 되면 농부들은 남쪽의 양지바른 밭에서 비로소 농사를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숙재(俶載)에서 숙(俶)은 '비로소, 시작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재(載)는 '싣는다, 일하다, 해(年)'을 뜻하는 글자인데 여기서는 '일하다'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숙재(俶載)는 '비로소 일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남묘(南畝)는 '남쪽 밭두둑'을 뜻하니 이는 곧 남쪽에 있는 밭을 말합니다. 남쪽에 있는 밭은 양지바른 밭입니다. 대개 집을 지을 때는 뒤에 산을 등지고 양지바른 남향으로 짓게 됩니다. 그래서 남쪽이란 양지바른 앞쪽이란 뜻이니 남묘(南畝)는 바로 집 앞에 있는 양지바른 밭을 말합니다. 대개 음력 정월 보름이 지나면 농사일을 준비하여 날이 풀리면 논과 밭에 나가 농사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시경(詩經)》의 『소아(小雅)』편「보전지습(甫田之什)」 <대전(大田)>이란 시에 숙재남묘(俶載南畝)의 구절이 나옵니다.
大田多稼 대전다가 큰 밭에 많은 곡식 심어야 하니
旣種旣戒 기종기계 먼저 씨앗 고르고 연장 갖추세.
旣備乃事 기비내사 농사일 준비 마치면
以我覃耜 이아염사 날카로운 보습 들고
俶載南畝 숙재남묘 남쪽 밭일 시작하여
播厥百穀 파궐백곡 온갖 씨앗 뿌리니
旣庭且碩 기정차석 새싹은 곧고 크게 자라
曾孫是若 증손시약 증손도 만족해 하네.
旣方旣早 기방기조 이윽고 이삭이 패니
旣堅旣好 기견기호 곧 자라나 잘 익을 걸세.
不稂不莠 불랑불유 강아지풀 한 포기 없으며
去其螟螣 거기명특 명충 특충 없애고
及其蟊賊 급기모적 모충과 적충 잡아 주어야
無害我田穉 무해아전치 우리 밭 어린 벼에 해가 없으리.
田朝有神 전조유신 전조신께서 영험을 나타내사
秉畀炎火 병비염화 불길 속에 해충을 던져 주옵소서.
.................. 중 략 ..................
☞ 覃耜(염사) : 날이 선 보습.
稂莠(낭유) : 강아지풀. 곡식에 해가 되는 풀
螟螣(명특): 명충과 박각시나방의 유충. 명은 알맹이를, 특은 잎을 먹음.
蟊賊(모적) : 모충과 적충. 모는 뿌리를, 적은 마디를 갉아 먹는 해충.
<대전(大田)>은 농사를 지어 수확하는 것을 축하하는 노래입니다. 천자문의 숙재남묘(俶載南畝)는 이곳에서 인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할 것은 묘(畝)는 본음(本音)이 '무'인데, '이랑, 밭두둑'을 뜻하지만 지적(地積)의 단위로도 쓰입니다. 주(周)나라의 제도에 사방 6척을 보(步)라 하고 100보(步)를 '1묘(畝)'라 했는데, 진(秦)나라 때는 240보(步)를 '1묘(畝)'라 하였고,그 이후부터는 이에 따랐다고 합니다. 현대는 약 100㎡가 1묘(畝)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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俶載南畝 我藝黍稷
【本文】
俶載南畝 我藝黍稷 숙재남묘 아예서직
봄이 되면 남쪽 밭서 농사를 시작하니
이때 나는 찰기장과 메기장을 심는다.
【解說】
앞에서 봄이 되면 농부들은 남쪽의 양지바른 밭에서 비로소 농사를 시작한다는 숙재남묘(俶載南畝)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이제 아예서직(我藝黍稷)에 대하여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예서직(我藝黍稷) 이때 나는 찰기장과 메기장을 심는다.
아(我)는 상형자(象形字)로, 본디, 날 끝이 들쭉날쭉한 창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가차(假借)하여 '나'의 뜻을 나타냅니다.
예(藝)는 운(芸) + 예(埶)의 형성자(形聲字)로, '예(埶)'는 '예(藝)'의 원자(原字)인데 여기다 '김매다'의 뜻인 운(芸)을 덧붙인 글자입니다. 예(藝)는 본뜻이 '손으로 땅에 곡식을 심는다'인데, 원예 기술의 뜻에서, 일반적으로, '재주'의 뜻도 나타냅니다.
서(黍)는 화(禾) + 수(水)의 회의자(會意字)로, '화(禾)'는 '벼'의 뜻이고, '수(水)'는 '물'의 뜻으로, 물은 액체인 술을 나타내며, 술의 재료로 알맞은 '기장'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화(禾) + 우(雨)의 회의자(會意字)로 보아, 곡식 중에도 가장 찰기가 많은 것이 '기장'이기 때문에 '화(禾)'에 물을 뜻하는 우(雨)의 약체(略體)를 더하여 '기장'이라는 뜻을 나타내었습니다. 서(黍)를 의부(意符)로 하여 찰기장이 차진 데서 '차지다, 차진 것'을 나타내는 문자를 이룹니다.
직(稷)은 화(禾) + 측(畟)의 형성자(形聲字)로, '측(畟)'은 '경작하다'의 뜻입니다. 화(禾)를 덧붙여, 농업에서의 주요한 곡식, '기장'의 뜻을 나타냅니다. 특히 메기장을 나타냅니다.
아예서직(我藝黍稷)은 나는 찰기장과 메기장을 심는다는 말입니다.
아(我)는 '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 자신을 말합니다.
'예(藝)'는 보통 원예(園藝)라든가 예능(藝能)처럼 '재주 예'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는 '심다(植)' 라는 뜻으로 '심을 예'로 쓰였습니다.
'서(黍)'와 직(稷)은 다같이 '기장'을 뜻합니다. 서(黍)는 '찰기장'이고 직(稷)은 '메기장'을 뜻합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이르기를 "직(稷)과 서(黍)는 한 부류에 두 종류이다. 차진 것은 서(黍)이고 차지지 않은 직(稷)이다. 직(稷)으로는 밥을 짓고, 서(黍)로는 술을 빚는다.(稷與黍 一類二種也 黏者爲黍 不黏者爲稷 稷可作飯 黍者可釀酒)" 하였습니다. 또한 직(稷)은 또 오곡을 주관하는 '곡식신'을 뜻하기도 합니다.
곡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오곡(五穀)을 들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쌀ㆍ보리ㆍ조ㆍ콩ㆍ기장이라 했지만, 고대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 조금씩 다르게 나와 있습니다. 《주례(周禮)》에는 벼ㆍ기장ㆍ피ㆍ보리ㆍ콩이라 했고,《예기(禮記)》에서는 삼(麻)ㆍ기장ㆍ피ㆍ보리ㆍ콩이라 했으며,《관자(管子)》에는 기장ㆍ차조ㆍ콩ㆍ보리ㆍ벼를 들고 있어 각기 조금씩 다릅니다.
현대에서는 오곡 중 으뜸을 벼라고 알겠지만 고대에는 사정이 좀 달라서 벼보다 먼저 등장한 것이 기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장을 일러 오곡지장(五穀之長)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서직(黍稷)은 고대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이었습니다. 또한 오곡(五穀)을 맡은 주신(主神)을 일러 직신(稷神)이라 할 정도로 기장은 중요한 곡물이었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국가를 건립하면 반드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두었습니다. 궁궐의 좌측에는 종묘(宗廟)를 세워 왕실의 조상을 기렸고, 우측에는 사직단(社稷壇)을 세워 토지신과 곡식신에 대하여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토지신을 사(社)라 하고 곡식신을 일러 직(稷)이라 했습니다. 토지와 곡식은 국가의 기반이기 때문에 사직(社稷)은 곧 국가(國家)를 대변했던 것이니 사직이 위태로우면 국가의 명운(命運)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뜻했던 것입니다.
아예서직(我藝黍稷)에서 '나는 찰기장과 메기장을 심는다'고 하였는데, 많고 많은 곡물 중에 왜 기장을 심는다고 하였을까요? 다음에 소개하는 《시경(詩經)》에 답이 있습니다.
《시경(詩經)》의 『소아(小雅)』편「곡풍지습(谷風之什)」 <초자(楚茨)>란 시에 아예서직(我藝黍稷)의 구절이 나옵니다.
楚楚者茨 초초자자 가시덩굴 우거진 납가새풀들
言抽其棘 언추기극 그 가시를 뽑으라고 말했던 것은
自昔何爲 자석하위 옛날부터 무엇을 하려 함인가?
我蓺黍稷 아예서직 우리 예서 기장을 심게 함이네.
我黍與與 아서여여 내가 심은 찰기장 무성하고요,
我稷翼翼 아직익익 내가 심은 메기장도 잘 되었다네.
我倉旣盈 아창기영 우리 창고 가득가득 이미 찼고요,
我庾維億 아유유억 노적가리 한없이 쌓여 있다네.
以爲酒食 이위주식 이것으로 술 빚고 음식 만들어
以享以祀 이향이사 조상 앞에 바치고 제사지내리.
以妥以侑 이타이유 시동을 모셔 놓고 술을 권하며
以介景福 이개경복 큰 복을 크게 하길 기원하리라.
.................중 략 ..............................
<초자(楚茨)>는 사대부 가운데 녹전(祿田)을 받은 사람이 농사에 힘써 가을에 오곡을 거두어들인 다음에 일족이 종가의 사당에 모여 제사지내며 부른 노래라고 합니다. 가시나무가 우거져서 쓸모 없을 것 같았지만 가시나무를 제거하고 거기에 찰기장과 메기장을 정성 다해 심었더니 한 해의 농사가 풍년이 들었습니다. 우선 기장으로 술을 빚고 음식을 만들어 감사한 마음으로 제일 우선 조상님들께 제사를 지내고 복을 비는 모습이 정답게 그려집니다.
이와 같이 기장은 고대에서 조상신이나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술의 원료이기에 중요한 곡물이었던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나라에서 모시는 제사 가운데 하나인 종묘(宗廟)나 사직단(社稷壇)의 제사에 쓰이는 술도 기장으로 만든 술이었던 것입니다.
이상으로 아예서직(我藝黍稷)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숙재남묘(俶載南畝) 아예서직(我藝黍稷)은 봄이 되면 농부들은 양지바른 남쪽 밭에서 일을 시작하니, 나는 이때 찰기장과 메기장을 심는다. 농사는 그 때를 잘 알아야 합니다. 게을러 때를 놓치면 한 해의 농사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농사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식량을 생산하는 일입니다. 식량은 한 가정 뿐만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기에 안정적인 식량확보는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엄동설한의 겨울이 가고 이제 봄이 왔습니다. 설이 지났으니 농부들은 농사지을 준비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숙재남묘(俶載南畝)하니 아예서직(我藝黍稷)이라'
나의 아예서직(我藝黍稷)은 무얼까요? 맡은 바 일에 충실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