治本於農 務玆稼穡
【本文】
治本於農 務玆稼穡 치본어농 무자가색
나라를 다스림은 농사에 근본하니 곡식 심고 거두는 일 힘써야 할 일이다.
【訓音】
治 다스릴 치 本 근본 본 於 어조사 어 農 농사 농
務 힘쓸 무 玆 이 자 稼 심을 가 穡 거둘 색
【解說】
제11장에서는 농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임을 밝히는 한편 자연의 본성을 깨달아 정직하여 바른 길을 행할 것이며 현명한 사람은 중용의 길로 갈 것과 늘 겸손하고 신칙할 것을 경계하고 덕성을 함양하여 언제나 몸과 말과 뜻을 바르게 가질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농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임을 밝힌 치본어농(治本於農)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글자의 자원(字源)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치(治)는 수(水) + 이(台)의 형성자(形聲字)로, '이(台)'는 '사(司)'와 통하여, '다스리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물을 다스리다의 뜻에서, 일반적으로 '다스리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본(本)은 지사자(指事字)로, 나무 밑동 뿌리 부분에 그 표시를 덧붙여, '근본'의 뜻을 나타내었습니다.
어(於)는 상형자(象形字)로 '오(烏)'와 같습니다. 까마귀의 울음소리의 의성어(擬聲語)에서 감탄사 '아'로 쓰이고, 가차(假借)하여 '관계, 피동, 비교' 등을 나타내는 어조사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농(農)은 갑골문(甲骨文)에서 림(林) + 진(辰)의 회의자(會意字)로 보아, '림(林)'은 '숲'의 뜻이고, '진(辰)'은 조개를 본뜬 것입니다. 갑골문에서는 석기(石器)의 상형처럼도 보이며, 돌이나 조가비로 만든 농구로 '땅을 갈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림(林)' 부분을 갑골문이나 금문(金文)에서는 초(艸)로 만든 것이 있으며, 금문에서는 다시 거기에 '전(田)을 덧붙인 것도 있고, 뒤에 변형을 거듭하여 곡(曲) + 진(辰)으로 변한 것입니다. 《설문(說文)》에 농경인야(農耕人也)라 했으니 농(農)은 '밭가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치본어농(治本於農)은 나라를 다스림은 농사에 근본한다는 말입니다. 제왕이든 백성이든 살아가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대업을 이루어 태평하게 되는 것이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불만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왕은 나라를 다스림에 반드시 농사를 근본으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치본어농(治本於農)과 같은 말로 농위정본(農爲政本)이란 말이 있습니다. 농사는 국정의 근본이란 말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 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도 맥락을 같이합니다. 농사는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근본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농사의 중요성을 깨달아 천자(天子)가 친히 밭을 갈고 황후(皇后)가 몸소 길쌈하는 것으로 모범을 보였던 것입니다.
고래로 어느 때건 농사의 중요성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만 조선시대 성종(成宗) 7년(1476)에 동대문 밖에 선농단(先農壇)을 축조하여 매년 경칩(驚蟄) 뒤 첫 해일(亥日)에 임금이 이곳에 나가 친히 제사(祭祀)를 지내고 밭갈이 시범을 보였다고 합니다.
농사의 중요성은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국가를 건립하면 반드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두었습니다. 궁궐의 좌측에는 종묘(宗廟)를 세워 왕실의 조상을 기렸고, 우측에는 사직단(社稷壇)을 세워 토지신과 곡식신에 대하여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토지신을 사(社)라 하고 곡식신을 일러 직(稷)이라 했습니다. 토지와 곡식은 국가의 기반이기 때문에 사직(社稷)은 곧 국가(國家)를 대변했던 것이니 사직이 위태로우면 국가의 명운(命運)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뜻했던 것입니다.
대개 임금은 백성으로써 하늘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으니 임금은 백성이 하늘로 삼는 식량을 부족함이 없도록 힘쓰는 것이 국정의 지표였던 것입니다. 춘추시대의 명재상인 관자(管子. 管中)은 말했습니다.
"곳간이 가득 차 있으면 예절을 알며, 의식이 풍족해지면 영욕을 안다"
(倉廩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
하였습니다. 배고픈 백성들에게 예절을 알 염치가 어디 있으며,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에게 영예와 치욕을 알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백성들이 예절을 알고 영예와 치욕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려면 의식을 풍족하게 마련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관자는 말합니다.
"나라에는 네 밧줄이 있다[國有四維].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어지고[一維絶則傾]
둘이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다[二維絶則危].
셋이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히고[三維絶則覆],
넷이 끊어지면 마침내 나라가 망한다[四維絶則滅]."
무엇이 네 개의 밧줄인가? 그것은 바로, 예(禮)와 의(義)와 염(廉)과 치(恥)라 하였습니다. 즉 예절(禮節)과 도의(道義)와 청렴(淸廉)과 수치(羞恥)입니다.
관자는 이 네 가지 밧줄이 끊어지면 결국 나라가 망한다고 내다보았습니다. 이 밧줄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면 백성들의 하늘인 의식을 풍족하게 해야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설 수 있음을 말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금은 의식이 풍족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예의염치는 엷어진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국가를 지탱하는 예의염치를 중시하는 것은 고금이 다를 수 없습니다. 이 사유(四維)가 없어지면 혼란과 혼돈으로 무법천지가 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 의식이 풍족하다보니 농사를 경시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문화가 발달하고 살기가 편해졌어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가장 1차적인 식량 문제는 위정자들이 늘 염두에 두는 국가의 대본임은 고금이 다를 수 없다고 봅니다.
치본어농(治本於農).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농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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治本於農 務玆稼穡
【本文】
治本於農 務玆稼穡 치본어농 무자가색
나라를 다스림은 농사에 근본하니 곡식 심고 거두는 일 힘써야 할 일이다.
【解說】
전구(前句)는 치본어농(治本於農)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농사에 있음을 밝히는 글이었습니다. 이어지는 구(句)는 무자가색(務玆稼穡)으로, 치본어농의 실천방안을 구체적으로 든 내용입니다. 글자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무(務)는 역(力) + 무([務-力])의 형성자(形聲字)로, 무(([務-力])는 복(攵. 攴) + 모(矛)으로, 미늘창으로 치고 덤비다의 뜻입니다. 이는 곤란에 맞서 나아가다, 힘쓰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설문(說文)》에 무면야(務勉也)라 했으니 무(務)는 '힘쓰다, 애써 일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자(玆)는 현(玄)을 둘 합친 회의자(會意字)로, 현(玄)을 둘 합쳐서, '검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나중에 '차(此)의 뜻으로 변하여 가까운 사물을 가리키는 '이'의 뜻을 나타냅니다.
가(稼)는 화(禾) + 가(家)의 형성자(形聲字)로, '가(家)'는 '가(嫁)'와 통하여, '옮겨 심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벼를 옮겨 심다, 농사'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그렇게 해서 '여문 벼이삭'의 뜻도 나타냅니다. 《설문(說文)》에 종왈가(種曰稼)라 했으니 '심는다'는 뜻입니다.
색(穡)은 화(禾) + 색(嗇)의 형성자(形聲字)로, '색(嗇)'은 '수확'의 뜻으로, '색(穡)'의 원자(原字)입니다. 뒷날에 화(禾)를 덧붙여 '곡식을 수확하다'의 뜻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설문(說文)》에 염왈색(斂曰穡)이라 했으니 '거두어들이다'의 뜻입니다. 전(轉)하여 농사(農事)의 뜻을 나타냅니다.
무자가색(務玆稼穡)은 이에 곡식을 심고 거두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면야(務勉야)라 했으니, 무(務)는 '힘써 일하는 것'을 말하고, 자차야(玆此也)라 했으니, 자(玆)는 가까운 곳을 가리키는 관형사이기도 하고, '이곳, 여기, 지금'을 뜻하는 말로도 쓰이나, 여기서는 '이에'라는 뜻으로 '그래서, 이리하여 곧'이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가(稼)는 종왈가(種曰稼)라 했으니, 곡식 등을 '심는 것'을 말하며, 색(穡)은 염왈색(斂曰穡)이라 했으니, 곡식 등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또, 가자식이배지야(稼者植而培之也)라 했으니, 가(稼)는 '심고 이를 가꾸는 것'을 말합니다. 색자예이수지야(穡者艾而收之也)라 했으니, 색(穡)이란 '곡식 등을 베어 이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가색(稼穡)은 '심고 거둠'을 말합니다. 심고 거두는 일은 곧 농사(農事)를 뜻합니다.
앞의 치본어농(治本於農)에서 '나라를 다스림은 농사에 근본한다' 하였으니, 무자가색(務玆稼穡)은 '이에 곡식을 심고 거둠에 힘써야 할 일이다.' 또는 '이 농사에 힘써야 한다'로 새겨집니다.
농사는 국정의 근본[農爲政本]이자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근본[農者天下之大本)이기에 고금의 위정자들은 농사에 힘썼던 것입니다.
옛부터 위정자들은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힘썼는데, 이를 뒷바침할 수 있는 국력을 기르는 데에 농업을 기반하였습니다. 유가(儒家)에서는 인의정치(仁義政治)인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기위하여 임금이 도덕성을 갖추어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 덕화(德化)가 백성들에게 전해지도록 힘써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맹자(孟子)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백성들의 생업을 보장할 수 있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을 갖는다면서 정전제(井田制)를 실시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정전제(井田制)란 토지를 우물 정(井)모양으로 9등분하여, 8가구가 각각 1등분씩 토지를 소유하여 경작하고 가운데의 1등분은 공동소작하여 세금을 내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백성들이 생업에 열중하여 항산을 함으로써 항심을 가져서 왕도정치가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치본어농(治本於農)의 농정(農政)을 통해 민생을 안정시켜 왕도정치 실현의 바탕을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또한 법가(法家)도 치본어농(治本於農)을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유가(儒家)가 민생의 안정에 주안점을 두어 왕도정치의 실현에 뜻을 둔 데에 반해, 법가는 농정(農政)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꿈꾸었습니다.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중농정책을 통해 농토를 개간하여 농지를 확보하고 그로부터 식량자원을 증대하여 부국(富國)을 도모하였습니다. 그 부를 통하여 강병을 육성하여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정복하여 천하의 강자가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강병을 만들려면 군사가 먹을 식량을 확보해야 하고 백성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지엄한 권위와 형벌에 의한 복종과 질서유지를 해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밖에도 제자백가(諸子百家) 중에는 농업을 중시한 농가(農家)가 있었습니다. 농가는 농업경제와 농업기술에 대하여 연구한 학파로, 이들은 농사를 직접 지어 의식주(衣食住)를 자급자족(自給自足)함으로써 봉건지주나 상인의 농민에 대한 이윤추구를 배척하고 저항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은 임금도 백성과 같이 직접 농사를 지어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의 생활를 해야만 천하가 균등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각 학파가 치본어농(治本於農)을 바탕으로 하되 그 도모하는 바는 달랐는데 권력의 정점인 통치자가 어디에 촛점을 맞추느냐에 민생이 안정되느냐 위태롭게 되느냐가 달려 있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민생이 위태롭게 된다면 민심은 흩어지게 마련입니다.
끝으로 무자가색(務玆稼穡)을 통해 유념해야 할 것은 농사의 성패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그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봄에는 밭을 갈아 씨앗을 심고, 여름에는 김을 매어 기르고, 가을에는 수확의 시기를 맞춰 거두고, 겨울에는 잘 갈무리 해야 합니다. 춘경하운(春耕夏耘) 추수동장(秋收冬藏)은 농민이 반드시 유념하여 힘써 행할 일입니다. 어디 농민 뿐이겠습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