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字文 工夫

110. 稽顙再拜 悚懼恐惶

bindol 2020. 11. 14. 18:43

稽顙再拜 悚懼恐惶

 

本文

稽顙再拜 悚懼恐惶 계상재배 송구공황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두 번 하고 나니

송구(悚懼)하고 두렵고 황송(惶悚)한 마음이다.

 

訓音

조아릴 계 이마 상 두 재 절 배

두려울 송 두려울 구 두려울 공 두려울 황

 

解說

앞 장에서 적후사속 제사증상(嫡後嗣續 祭祀蒸嘗)을 공부하였습니다. 내용은 적장자(嫡長者)로 가문(家門)의 대()를 잇고, 제사를 받드는 것이 후손의 도리임을 밝히고, 천자나 제후는 시제(時祭)를 드리는데, 가을 제사를 '()'이라 하고 겨울제사를 '()'이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앞 장의 적후사속(嫡後嗣續 )의 연장선상에 있는 '계상재배 송구공황(稽顙再拜 悚懼恐惶)'을 공부해 보겠습니다. 제사는 어떻게 지내며 마음은 어떤 심정인가를 나타내 보였는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상재배(稽顙再拜)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두 번 하고 나니

송구공황(悚懼恐惶) 송구(悚懼)하고 두렵고 황송(惶悚)한 마음이다.

우선 글자의 자원(字源)부터 알아보고 그 뜻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는 화() + () + ()의 형성자(形聲字), '()''다다르다'의 뜻이고, '()'는 손의 한 끝을 누르는 모양을 본떠, '나무라다'의 뜻입니다. 곡물의 모양[]이 갈 때까지 가서[] 멈추는 데서[], '머무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 사고(思考)를 끝간 데까지 돌려 굴리다, '생각하다, 헤아리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머물러서 살피고 헤아리려면 머리를 숙여서 해야 하기 때문에 '조아리다'의 뜻도 생겼습니다. 여기서는 '조아리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 원래는 화()와 우()로 이루어져 곡식[]이 손상을 입어[] 일정 단계에서 머문 채 더 자라지 않는 모습으로부터 머리 숙여 그 원인을 '살피고' '따지다'는 의미를 그려냈는데, 이후 소리부인 지()가 더해져 지금처럼 되었고, 뜻도 맛[]으로 살피고 헤아려 봄을 강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은 혈() + ()의 형성자(形聲字), '()'은 뽕나무를 뜻합니다. '()'은 머리부분을 뜻합니다. 머리부분[]의 뽕잎[] 크기의 '이마'를 뜻합니다.

()는 상형자(象形字), 하나를 들어 올림으로써 좌우 두 개가 동시에 올라가는 모양을 본떠, 어떤 한 일이 일어나서 거기에 겹쳐 '또 하나의 일이 일어나다, 다시, 거듭'의 뜻을 나타냅니다.

()는 회의자(會意字), 전문(箋文)은 수() + . (). '. ()'는 가지가 우거진 것을 본뜬 것입니다. 사악한 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절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수() + ()의 형성자(形聲字)로 보아 새로 수확한 곡식()을 조상신에게 두 손[]으로 절을 하며 바치는 모습이었고, 이로부터 '절을 하다, 받들다, 바치다'의 뜻이 나왔다고 합니다.

()은 심() + ()의 형성자(形聲字), '()'은 다발로 묶은 땔나무의 상형으로, 죄어들어 오므라듦의 뜻입니다. 마음[]이 죄어들어 오므라들다[], '두려워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후 '공경하다'의 뜻도 나왔는데, 두려워하거나 공경스러워 제멋대로 하지 않고 마음[]을 묶어 두다[]의 뜻을 담았습니다.

()는 심() + ()의 형성자(形聲字), '()'는 새가 무서워서 눈을 요리조리 돌리는 형상입니다. 여기에[] '()'을 붙여, '두려워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 마음[]이 놀라 눈이 동그래져[] 두려워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은 심() + ()의 형성자(形聲字), '()'은 조심스럽게 끌을 잡은 모양이라 합니다. 조심스러운[] 마음[], '두려워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다른 설은 흙을 다질 때 나는[] 큰 소리처럼 마음[]이 쿵덕거리며 놀라거나 두려운 상태를 말한다고 합니다. 금문(金文)에 손에 공구를 쥔 모습으로 그린 '(. 안을 공)'에서 이로부터 '놀라다, 무서워하다, 걱정하다'의 뜻이 나왔으며, '아마도'라는 뜻으로도 쓰였습니다.

()은 심() + ()의 형성자(形聲字), '()''()'과 통하여, 침착하게 걷지 못하다의 뜻입니다. 마음[]이 동요하는[] , '두려워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 지체 높은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 앞에서의 마음[]으로부터 황공(惶恐)함과 '두려워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계상재배(稽顙再拜)에서 '()''상고할 계, 헤아릴 계, 머무를 계, 이를 계, 두드릴 계, 견줄 계, 맞을 계, 조아릴 계 등의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조아릴 계'의 뜻입니다. '()''이마 상, 머리 상, 절할 상의 뜻이 있습니다. '()''두 재, 재차 재, 두 번 할 재'의 뜻이고, '()''절 배, 절할 배, 받들 배, 벼슬 줄 배, 굽힐 배 '의 뜻이 있습니다.

계상(稽顙)은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인데 이는 이마를 땅(바닥)에 대어 절을 한다는 뜻입니다. 최상의 예를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뜻의 '계수(稽首)'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불교에서 흔히 쓰는 용어입니다. 계수(稽首)는 범어(梵語) 반다나(vandana)를 한역한 말로 계수례(稽首禮)라고도 합니다. 머리를 땅에 대고 경례하는 인도에서의 최상의 경례방법입니다.

예기(禮記)》『단궁 하(檀弓 下)'계상(稽顙)'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拜稽顙 哀戚之至隱也 稽顙隱之甚也

배계상 애척지지은야 계상은지심야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슬퍼하고 애석해 함이 지극히 애통해 함이다.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애통함 중에서도 가장 심한 것이다.

이렇듯 '계상(稽顙)'은 슬픈 마음의 지극한 표현입니다.

재배(再拜)는 두 번 절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제사를 지낼 때 망자(亡者)에게 두 번 절합니다. 망자에게 두 번 절하는 것은 돌아가신 분에 대한 공경의 표시입니다. 이는 동양사상의 음양(陰陽)사상에서 나온 것이라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한번() 망자에게는 두 번() 절하여 예를 갖춥니다.

부모를 비롯하여 어른에게 절을 할 때는 일반적으로는 일배(一拜)를 올리고, 고인(故人)에게는 재배(再拜)합니다. 그리고 스승에게는 삼배(三拜)를 올리고, 신하가 군왕에게 정식으로 예를 올릴 때는 사배(四拜)를 합니다. 또한 왕이나 황제가 하늘에 지내는 천제(天祭)9배를 올립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3배를 올립니다. 삼계(三界)의 스승이시기에 공경을 담아 예를 올립니다. 보살(菩薩)님이나 신중(神衆)님께도 공경의 의미로 3배를 올립니다. 스님에게 인사드릴 때 1배를 하기도 하지만 보통 3배를 올립니다. 이밖에 불전에 나아가 참회나 하심(下心)으로 예를 올릴 때는 보통 108배를 하기도 3000, 1만배를 하기도 합니다.

계상재배(稽顙再拜)는 이마를 땅에 대고 두 번 절한다는 뜻입니다. 즉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앞 장의 '적후사속 제사증상(嫡後嗣續 祭祀蒸嘗)'이란 글에 이어진 글입니다. 여기서는 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나 조상에게 제사하는 예를 예시한 것입니다.

계상재배(稽顙再拜)는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하고는 엎드린 채 잠시 그대로 있다가 천천히 머리를 들고 일어나 두 번 행하고 반배로 마치는 예법입니다. 이와 같은 예법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상이 나서 문상을 할 때나 제사를 지낼 때 이와 같은 예법으로 예를 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계 신자들은 절을 하지 않고 묵념으로 대체하기도 하는데 가정에 따라 이것으로 갈등을 빚기도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입니다.

송구공황(悚懼恐惶)은 모두 '두려움'을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두려울 송, 두려워할 송, 당황할 송'입니다. '()''두려울 구, 두려워할 구, 으를 구'입니다. '()''두려울 공, 두려워할 공, 으름 공'입니다. '()''두려울 황, 두려워할 황입니다. 전체의 뜻은 '송구(悚懼)하고 두렵고 황송(惶悚)한 마음이다.'라는 뜻입니다.

송구공황(悚懼恐惶)은 모두 '두려워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글자가 가지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은 모골송연(毛骨悚然)이란 말이 있듯이 터럭이 곤두설 정도의 두려움으로 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흐를 정도의 두려움입니다.

'()'는 새가 두려워서 눈을 요리조리 돌리듯 어떤 해를 당하지 않을까 깜짝깜짝 놀라는 마음속의 불안한 두려움입니다.

'()'은 아주 심한 두려움입니다. 간이 콩알만 해질 만큼 대소변이 나올 만큼 몹시 놀라 자지러질 만큼 무서운 두려움입니다.

'()'은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皇帝) 앞과 같은 지체 높은 사람 앞에서 권위와 위압감에서 받는 두려움, 조심조심하면서 무슨 실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입니다.

이밖에도 두려움을 나타내는 글자가 많습니다. 무섭고 두려워서 마음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듯 흩어지는 두려워할 포(), 무서운 것을 보고 하얗게 질리는 두려워할 파(), 무섭고 두려워서 뒷걸음 치고 싶은 겁낼 겁(), 귀신이나 호랑이 등 무서운 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두려워할 외() 등이 있습니다.

'계상재배(稽顙再拜) 송구공황(悚懼恐惶)'은 제사를 지낼 때 선조(先祖)에 고함을 엄숙하고 공경히 하는 모습입니다.

예기(禮記)》『24 제의(祭義) 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효자가 부조(父祖)의 제사를 할 때에는 그 정성을 다하여 삼가고, 그 믿음을 다하여 미덥게 하고, 그 공경함을 다하여 공경하고, 그 예를 다하여 조금의 소홀함이 없이 하면서 일진일퇴(一進一退)에 경건(敬虔)해야 한다. 그 태도는 마치 직접 부모의 말씀을 들고 그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이 하는 것이다.

孝子之祭也 盡其慤而慤焉 盡其信而信焉 盡其敬而敬焉 盡其禮而不過失焉

효자지제야 진기각이각언 진기신이신언 진기경이경언 진기예이불과실언

進退必敬 如親聽命 則或使之也

진퇴필경 여친청명 즉혹사지야

이렇듯 제사를 지내는 마음가짐은 온갖 정성과 공경의 마음을 담는 것입니다. 예기의 말씀을 좀더 이어 보겠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면 그것이 효자인지 아닌지를 즉시 알 수 있다. 그 위치에 서 있을 때는 공경하는 마음을 유지하여 몸을 구부리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공경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상냥하게 하며 제물을 바칠 때에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모의 영혼이 기꺼이 제사를 받아 주시기를 일념으로 바라는 것이다.

물러나 자기 위치로 돌아가서 서 있을 때는 지금 곧 어떤 명령이 내리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는 것 같으며 이미 제물을 거두고 신 앞에 물러나도 경건한 얼굴 표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효자의 제사인 것이다.

孝子之祭 可知也 其立之也 敬而詘 其進之也 敬而惟 其薦之也 敬而欲

효자지제 가지야 기립지야 경이굴 기진지야 경이유 기천지야 경이욕

退而立 如將受命 已徹而退 敬齊之色 不絶於面 孝子之祭也

퇴이립 여장수명 이철이퇴 경제지색 부절어면 효자지제야

제사에 임하는 자식들이 이와 같은 마음이면 제사를 정성껏 지내는 것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절을 올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부모나 조상을 생각할 때 정성이 모자라지는 않았나 소홀한 면이 없지 않았나 하는 두려운 마음[悚懼恐惶]을 내는 것은 자식의 부모를 그리는 후손이 조상을 사모하는 애틋한 마음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제사는 어떠할까요? 일과성 통과의례로 흐르지는 않나 스스로 반성해 보곤 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모든 분들은 물론 정성을 다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다하여 제수를 준비하고 가지런한 마음으로 제사를 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예전과는 다르게 가족, 일가 친척이 주변에 모여 사는 것도 아니고 각자 생활영역이 전국구이고 심지어는 외국에 사는 경우도 많아서 제사 모시기도 힘든 사정이 있습니다. 또는 종교적 신념으로 제사를 꺼리기도 하고 번거롭다는 생각으로 제사를 폐하는 예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에 대한 생각이 점차 엷어져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사에 임하는 마음이 정성과 공경심이 엷어지면 형식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제사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부모나 조상에 대한 은혜를 생각하고 추모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그 깊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제사에 임하는 마음은 경건할 수밖에 없습니다. 늘 그 은혜를 잊지 말고 바른 마음과 바른 행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제사이야기를 마치며 기왕에 전통적으로 지내오는 제사(祭祀)와 불교에서 행하는 재()에 대한 차이점을 살펴보고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祭祀)는 대개 유교적 제사의식입니다. 불교에서도 돌아가신 분에 대한 추모의식과 같은 의식이 있습니다. 조상에 대한 정성과 공경심은 다르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재의식(齋儀式)이라 합니다. 유교의 제사와 같이 음식을 진설하고 공양을 베품은 비슷하나 내용상으로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의식을 하나하나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제()와 재()의 차이점을 알아보고 마치려 합니다.

()는 무교(巫敎)나 유교(儒敎) 등에서 행하는 제사(祭祀)를 말합니다. 신령에게 음식을 정성스럽게 차려 올리고 기원을 드리거나, 돌아간 이를 추모하는 한편 음덕을 베풀어 주십사하고 기원하는 의식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재()는 그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란 범어 우포싸다(Uposadha)를 한역한 말로 이는 본래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맑게 하고 악업을 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죄업을 참회하고 새롭게 된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부처님께 정성을 바치고 경건하게 귀의하는 신앙을 표현하는 의식으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재를 지내는 것은 삼업을 맑히어 악업이 소멸되고 바른 정법(正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원()이 담긴 의식입니다. 재라는 의례를 통해 선()을 행하고 법문(法門)을 설하여 영가(靈駕)로 하여금 지혜(智慧)를 얻어 제행(諸行) 실상(實相)을 바로 알아 이생의 집착을 훌훌 떨쳐 버려서 왕생극락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겠다는 불자로서의 발원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해당 영가 뿐만 아니라 천도되지 못한 채 떠도는 유주무주(有主無主)의 고혼과 지옥에서 고통받는 지옥중생조차도 구제되기를 바라는 점입니다.

또한 제사(祭祀)를 지낼 때는 고기와 술을 올리지만 불교의 재()는 꽃과 향, 떡과 과일, 차 등 정갈한 공양을 올리는 것으로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번 천자문은 제사에 대한 묘사여서 이 기회에 '()''()'를 혼동하는 분들이 없지 않음을 생각하여 말미에 간략히 기술해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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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稽顙再拜 悚懼恐惶

 

조아릴 계/ 이마 상/ 거듭 재/ 절 배

稽顙再拜(계상재배) : 이마를 바닥에 조아리며 두 번 절하고,

두려울 송/ 두려울 구/ 두려울 공/ 두려울 황

悚懼恐惶(송구공황) : 두렵고 두려워하며 거듭 공경한다.

 

110. 稽顙再拜 悚懼恐惶(계상재배 송구공황)

: 이마를 땅에 대고 두 번 절하니 송구하고 황송한 마음이라.

공자는 당시 아주 혼란스런 시대를 구하고자 학문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그 시대의 역사서인 춘추(春秋)에서 공자가 밝히고 있는 군주 시해 사건만도 36건이나 되고, 멸망한 제후국만 해도 52개국이나 됩니다.

그럼 공자는 그 춘추시대를 어떤 방법으로 구하고자 했을까요?

그것은 예악(禮樂)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태평성대였다는 고대 왕조의 예악을 연구하고 그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공자의 제자들 역시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예악 전통을 발굴하고 예악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가(儒家)에서 주공(周公)이 저술. 편찬했다고 전해오는 주례(周禮)와 각종 의식과 행사에 관한 기록인 의례(儀禮)를 발굴했고,

그들의 예악 문화를 집대성한 예기(禮記)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기의 대표적 실행이 제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대다수 사람들이 기꺼이 실행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혼란했던 시대를 바로잡는 데 예기의 실행이 일정 부분 기여했음은 분명합니다.

이번 편 구절 '계상재배(稽顙再拜) 송구공황(悚懼恐惶)'은 우리 조상들도 잘 이해하였을 걸로 사료됩니다.

제사를 드릴 때, 이마를 바닥에 조아리며 두 번 절하고, 조상을 극진히 공경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가르침이 전해내려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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