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광(胡廣·91~172년)은 후한 때 외척과 환관이 번갈아가며 권력을 남용할 때 줄곧 고위직을 거쳐 재상에 있었으며 안제(安帝)부터 영제(靈帝)까지 여섯 황제를 무탈하게 섬긴 인물이다.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호광전(胡廣傳)에 따르면 안제는 그가 써서 올리는 주장(奏章·각종 보고서나 건의문)이 천하제일이라고 극찬하며 초고속 승진시켰다. 그의 성품에 대해서도 온유하고 매사 조심하며 검소했고 말은 겸손했으며 몸가짐은 공손했다고 적고 있다. 실무적인 일에 통달해 늘 명쾌한 해법을 제시했다. 효심 또한 깊어 계모가 집에 계실 때는 입에 늙을 노(老)를 담지 않았고, 혹시 계모가 볼까 봐 집 안에 지팡이 등도 모두 치워버렸다. 자리가 내려질 때마다 사양했으나 다시 불려가 마침내 재상에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그를 높여 “만 가지 일 중에 풀리지 않는 것[不理]이 있으면 호광에게 물어보라. 천하의 중용(中庸)이 호공(胡公)에게 있다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중대 사안이 있을 때마다 묘한 타협안을 잘 냈다는 뜻이다. 이런 중용을 무기로 그는 31년 동안 재상의 지위를 지켜낸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범엽은 그에게는 건직지풍(謇直之風), 즉 강직하게 직언하는 풍모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후세에는 자기 몸만 보전하고 나랏일은 간신이나 권신(權臣)들의 눈치만 보며 제대로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호광의 중용’을 행한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조선의 선비 남효온(南孝溫·1454~1492년)도 호광을 비꼬는 시를 지어 “당시에는 서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숙제(伯夷叔齊)를 비웃었지만, 사후에 호광은 아첨꾼이라는 불명예로 몇 년 동안이나 더럽혀졌던가!”라고 노래했다. 언론인 출신으로 도지사에 총리까지 지내고 여당의 대표로 취임해 단 한 번도 국정 현안에 대해 이렇다 하게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지 못하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근 행태를 보니 현대판 호광이 아닌가 싶어서 호광을 기억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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