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열전

[이한우의 간신열전] [56] 명나라 말기 환관 간신 魏忠賢

bindol 2020. 11. 4. 05:33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중국 명나라 말기의 대표적 간신은 환관 위충현(魏忠賢·?~1627년)이다. 일반적으로 환관의 간사한 짓은 개인적 총애를 얻는 데 집중됐지만 위충현은 권력에 관심이 많았다.

원래 그는 시정잡배였는데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자 스스로 거세해 환관이 됐고 궁에 들어가 당시 황제인 신종(神宗·재위 1572~1620)의 장손 주유교(朱由校)에게 접근해 측근이 됐다. 1620년 광종(光宗)이 즉위했으나 한 달 만에 죽어 ‘한 달 황제’라는 이름을 남겼고 이어 주유교가 황제에 올랐다. 그가 희종(喜宗)이다. 특이하게도 희종은 목공예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위충현에게 정사를 맡겼다. 이에 위충현은 환관의 수장이면서도 동시에 비밀경찰인 동창(東廠)의 책임자가 됐다.

당시 조정에서는 남쪽 지방의 사대부를 중심으로 청의(淸議)를 대변하던 동림당(東林黨)이 민심의 지지를 얻으며 영향력을 행사했고 환관들이 당을 이룬 엄당(閹黨)이 이에 맞서고 있었다. 동창의 책임자 위충현은 1625년 사건을 조작해 동림당의 핵심 인물을 대거 잡아 죽이고 전권을 장악했다. 황제를 거의 없는 듯이 여겨 스스로 요순(堯舜)에 견주면서 ‘요천순덕지성지신(堯天舜德至聖至神)’이라는 칭호를 썼고,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황제 다음이라는 의미에서 “구천세(九千歲)”를 외쳐야 했다.

 

그러나 그의 위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2년 후에 희종이 죽고 동생 사종(思宗)이 즉위하자 위충현은 탄핵당해 유배 가야 했다. 도중에 달아나려 했지만 뜻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자살했다. 그의 시신은 천참만륙(千斬萬戮)됐다고 한다. 조정 공론과 민심을 저버린 결과였다.

오랜 논란 끝에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미 이런 기구는 중국에나 있는 비민주적 기구라는 비판이 계속돼 왔다. 초대 공수처장 후보를 두고 이런저런 인물이 언급되고 있다. 지금 법무부 장관이 온몸으로 보여주듯이 공정성을 잃는다면 동창을 맡았던 위충현 신세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 때문에 누가 그 자리에 가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