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16.순식(瞬息)

bindol 2020. 12. 24. 05:27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16.순식(瞬息)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5. 8. 19. 16:58

 


시인 이백은 어느 봄 날 살구꽃, 오얏꽃 피는 정원에서 열린 파티에 참가해 유명한 말을 남겼다.
"천지는 만물의 여관, 시간은 영겁을 지나는 나그네"라는 내용이다.
그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봄날의 흥취로 세월의 덧없음을 말했던 그의 방식대로 술만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삶이 너무 짧다.

 

 

24절기의 하나 처서(處暑)가 곧 눈앞에 닥친다. 여름의 끝을 알리는 절기다. ‘머물다’라는 뜻의 글자 處(처)는 이 절기를 나타내는 경우에 있어서는 ‘멈추다’라는 뜻에 가깝다. 그러니까 여름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때라는 뜻이다.

 

벌써 가을을 알린다. 절기 입추(立秋)는 이미 지났다. 그러나 늦더위는 쉬이 물러가지 않는다. 대지를 달궜던 뜨거운 여름의 태양은 그 위세를 함부로 거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침과 저녁으로는 선선하다. 처서에 이르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무더운 여름밤 쉴 새 없이 날아들었던 귀찮은 모기도 입이 비뚤어지면 더 이상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빨지 못한다. 그렇듯 이 무더운 여름은 모기와 함께 사라지려는가 보다. 따지고 보면 이 칼럼에서 가을의 소리를 알렸던 내용으로 글을 쓴 게 엊그제처럼 느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가르는 사시(四時)의 드나듦이 이렇듯 가볍고 빠르기만 하다. 그러니 세월의 갈마듦이 덧없이 느껴지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이의 아주 일반적인 정서다.

 

순식(瞬息)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순식간(瞬息間)이 일반적이다. 눈 한 번 깜짝이는 그 사이를 瞬(순)이라고 한다. 숨 한 번 들이켰다 뱉는 일을 식(息)이라고 한다. 그렇듯 눈 깜박이고, 호흡 한 번 하는 사이를 순식간(瞬息間)이라고 적는다. 분명히 과장일 테지만, 세월의 갈마듦을 그에 비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장자(莊子)는 문틈으로 지나가는 하얀 망아지로 세월의 덧없음을 그렸다. 문학적 표현이라서 사람들이 입에 많이 올리는 얘기다. 한자 성어로는 白駒過隙(백구과극)이라고 적는다. 흰(白) 망아지(駒)가 틈(隙)으로 지나가다(過)는 엮음이다. 사람이 좁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볼 때 저 멀리서 지나가는 망아지는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가?

 

걸음을 멈추고 문득 돌아봤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세월과 시간은 흔히 물에 비유하기 좋았던 모양이다. 냇가에 서서 물을 바라봤던 공자(孔子)도 “가는 세월은 이와 같을지니,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했다. 그로써 동양의 사람들은 흘러가는 물과 세월을 병치하는 버릇이 생겼다. 流年(유년), 流光(유광), 逝川(서천), 逝波(서파) 등이 그런 맥락의 단어다.

 

감성의 폭을 크게 지녔던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무릇 하늘과 땅이라는 존재는 만물이 거쳐 가는 여관이요, 세월이라는 것은 영겁을 지나가는 나그네(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라고 했다. 거침없이 늘 지나쳐 갈 뿐인 나그네를 세월에 비유한 점이 재미있다.

 

그렇다고 덧없이 스쳐 지나가는 세월만 한탄하랴. 삶이 유한하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 이 적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제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 실천에 옮긴다. 그를 월령(月令)이라고 적어도 무방하겠다. 때에 따라 해야 할 일을 정해 실행에 나서자는 얘기다.

 

장마철에 찌들었던 옷과 책 등을 햇빛에 말리는 일이 曝曬(포쇄)다. 책 말리는 일만을 가리키면 쇄서(曬書)다. 마침 처서에 이르면 하는 일이라고 한다. 지나간 봄과 여름에 내가 쌓고 이룬 것은 무엇일까. 조용히 꺼내 햇빛에 말려 볼 작정이다. 그저 흘러 지난다고 한탄만 하고 있기에 세월은 너무 짧다.

 

<한자 풀이>

瞬 (깜짝일 순): (눈을)깜짝이다. 보다. 주시하다. 잠깐. 눈 깜짝할 사이.

息 (쉴 식): 쉬다. 숨 쉬다, 호흡하다. 생존하다. 살다, 생활하다. 번식하다. 자라다, 키우다. 그치다, 그만두다, 중지하다. 망하다.

處 (곳 처): 곳, 처소. 때, 시간. 지위, 신분. 부분. 일정한 표준. 살다, 거주하다. 휴식하다, 정착하다. 머무르다. 있다, 은거하다.

暑 (더울 서): 덥다. 더위. 여름, 더운 계절.

駒 (망아지 구): 망아지. 새끼말. 짐승의 새끼. 젊은이. 흩어지고 모여들지 않는 모양.

隙 (틈 극): 틈, 벌어진 틈. 구멍. 흠, 결점. 겨를, 여가, 짬. 원한, 불화. 놀리고 있는 땅. 갈라지다, 터지다. 비다, 경작하지 않다. 이웃하다.

逝 (갈 서): 가다, 지나가다. 죽다, 세상을 떠나다. 날다. 달리다, 뛰다. 맹세하다. 이에(발어사).

曝 (사나울 폭,쬘 폭,사나울 포,앙상할 박): 사납다. 난폭하다. 해치다. 모질다, 모질게 굴다. 세차다. 맨손으로 치다. 불끈 일어나다. 업신여기다. 조급하다. 갑자기. 쬐다. 따뜻하게 하다. 햇볕에 말리다.

曬 (쬘 쇄): 쬐다. 볕에 말리다. 볕이 나다.

 

<중국어&성어>

一眨眼 yī zhǎ yǎn: 눈 한 번 깜짝하다. 뒤에 功夫를 붙여 ‘눈 한 번 깜짝할 새’라는 뜻으로 쓴다.

瞬息 shùn xī: 우리와 쓰임새가 같다. 본문 풀이 참조.

晒书(曬書) shài shū: 본문 풀이의 뜻이 있고, 옛 문인들이 자신의 재주와 학식을 뽐내는 일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白驹过隙(白駒過隙) bái jū guò xì: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 편에 나오는 말이다. 뜻은 본문 풀이와 같다.



출처: https://hanjoong.tistory.com/entry/한자-그물로-중국어-잡기-116순식瞬息?category=662101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