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92. 존엄(尊嚴)

bindol 2020. 12. 26. 06:10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92. 존엄(尊嚴)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7. 3. 2. 09:43

동양 고대 청동기의 제기(祭器) 중 하나인 尊(존, 또는 樽으로도 적는다).

'존엄'이라는 단어의 맥락을 엿볼 수 있는 그릇이다.

 

 

원래 좋은 말이다. 지위가 높으며 품격 또한 우뚝한 사람에게 따르는 낱말이기 때문이다. 높아서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따르는 말이 곧 존엄(尊嚴)이다. 그러나 북한 세습 왕조 추종자들이 제 권력자를 이로써 표현한 지가 제법 오래여서 개운치 않기도 하다.

 

낱말을 이루는 두 글자는 본래 상당수의 한자가 그렇듯이 주술(呪術)과 제례(祭禮)에 뿌리가 닿아 있는 듯하다. 우선 ()이라는 글자에는 술, 또는 술 담는 제기(祭器)를 가리키는 ()라는 글자요소가 등장한다. 이어 그를 받치고 있는 손()이 등장한다.

 

초기 글자꼴인 갑골문 등을 보면 두 손으로 술이 담긴 제기를 떠받치는 형태다. 따라서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신에게 바치는 술잔, 또는 그런 술을 받을 수 있는 높은 위치의 사람 등으로 뜻풀이를 할 수 있다. 그로써 높다의 새김으로 발전했다고 본다.

 

()은 풀이가 다소 엇갈리기는 하지만 역시 주술이나 제례로 풀어보는 흐름이 가능하다. 그에 따르면 신이나 하늘의 계시가 담긴 그릇, 술을 퍼내는 사람, 그리고 절벽을 가리키는 글자요소의 결합이다. 그로써 역시 제사나 주술 현장의 엄숙함을 표현한 글자라고 푼다.

 

그러나 이 글자 둘의 조합이 연역 과정을 거치며 얻은 진짜 새김은 부모님이다. 저를 낳아주신 부모의 은공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제게는 세상의 가장 높은 이가 바로 부모다. 존당(尊堂)이라는 말은 다른 이의 부모를 일컬을 때 쓴다. 존대인(尊大人)도 마찬가지다. 남의 부모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존엄(尊嚴)의 두 글자는 본래 부모 중 아버지를 표현할 때 더 적합하다. 보통은 높고 엄격함의 대명사가 바로 부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엄격하고, 어머니는 자애롭다는 뜻의 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성어 표현이 등장한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

 

그래서 가엄(家嚴)이라고 적으면 스스로가 남에게 제 아버지를 일컫는 경칭이다. 아버지는 곧 엄친(嚴親)으로 적기도 한다. 영존(令尊)은 남의 아버지를 지칭한다. 엄군(嚴君)은 원래 부모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앞에 적은 흐름 때문에 보통은 아버지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어머니는 그에 비해 자애로움이 두드러진다. 자모(慈母)가 대표적이고, 어머니 머무는 곳을 일컫는 자당(慈堂)이라는 말도 나중에는 남의 모친을 높여 부르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자친(慈親)은 엄친(嚴親)과 대칭을 이루는 어머니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존엄이라는 낱말의 흐름은 아버지, 어머니와 꽤 오래 함께 붙어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지위가 높고 품격이 우뚝해 고상하며 범접하기 쉽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 말로 변했다. 세습의 북한 왕조가 이를 자주 사용하면서 어감으로서는 썩 좋지 않은 뜻으로 등장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존엄의 바탕은 스스로가 세우는 법이다. 우리사회는 민주와 자유, 법치라는 바탕을 유지해야 한다. 그 바탕을 확고히 세우지 않고서는 자존(自尊)과 위엄(威嚴)을 이룰 수 없는 법이다. 이제 곧 대통령 탄핵의 용인이냐 기각이냐를 두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진다.

 

제 정치적인 견해에 함몰해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려는 양대 세력 사이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판결이 혼란으로 이어진다면 우리의 존엄은 사라진다. 뒤에 남는 것은 비속(卑俗)과 비천(卑賤)이다. 곧 건국 70주년을 맞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까.



출처: https://hanjoong.tistory.com/entry/한자-그물로-중국어-잡기-192-존엄尊嚴?category=662101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