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96. 투기(投機)

bindol 2020. 12. 26. 06:16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96. 투기(投機)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7. 3. 29. 15:47

 

북송의 유명 문인이자 관료인 구양수의 초상.

시에서 '투기'라는 말을 사용했다.

 

 

예전에 한 번 이 제목으로 글을 썼다. 어딘가 불량해 보이는 구석이 있는 단어가 투기(投機). 많은 한자 낱말이 그렇듯이 이 말에도 나름대로 유래를 살펴 볼 여지가 있다. 본래의 출발점에서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술 좋아하는 이, 친구 좋아하는 사람들이 입에 자주 올리는 명구가 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시면 천 잔도 적다 할 것이요, 배포가 맞지 않는 이와 얘기를 나눈다면 반 마디 말도 많다 할 것이리(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 ()대 유명 문인이자 관료였던 구양수(歐陽修)가 지은 시에 나온다.

 

요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투기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라는 글자는 서로 합쳐지다는 뜻을 지녔다. ()이라는 뜻을 간직한 글자다. 불교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의 타고난 능력 크기를 얘기할 때 사용하는 근기(根機)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투기라는 말은 결국 서로의 틀과 근간이 맞아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살아가는 여정에서 지니는 지향(志向), 각자 지닌 심성(心性), 삶을 바라보는 자세, 현안을 두고 품는 견해 등이 일치하는 경우다. 이를 테면 배포가 서로 맞아 떨어지는 상태의 표현이다.

 

불가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처의 가르침에 끝까지 자신을 던지는 행위라는 뜻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불교에서의 가르침으로 볼 때 투기는 매우 좋다. 부처의 깨달음에 다가가려는 노력, 즉 구도(求道)에 가까운 뜻이기 때문이다.

 

본디 괜찮은 뜻으로 쓰이던 이 단어는 나중에 그 의미가 달라진다. 머리를 써서 기회를 엿보다가 제 이익을 취하려는 행동이다. 행운을 바라는 사행(射倖), 운 때에 기대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박(賭博)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부처의 가르침에 몸을 날리지 않고 제 몫이 아닌 재물 등에 올라타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위다. 따라서 기회를 틈타 이익을 거두려는 행위. 자신에게 찾아온 좋은 기회 몸을 날리는 동작이자, 이익에 민감해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 것을 이름이다.

 

시장에서 투기와 투자는 쓰임새가 다르다. 자신의 재화를 불리기 위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돈을 묻는 게 투자일 것이다. 그에 비해 투기는 단기적인 차익을 염두에 두고 폭리까지 노리는 경우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행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취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이 말의 용례는 극히 부정적이다.

 

신기루처럼 저 멀리 떠오르는 이익과 기회의 환영(幻影)을 좇는 사람들로 대한민국의 하늘이 붐비고 있다. 곧 펼쳐질 대선이 가져다주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정치 철새들의 행렬이 어지럽게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철새 떼의 군무(群舞)는 아주 어지럽다. 그러나 화려하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목격하는 사람 철새들의 비행은 그냥 어지러울 뿐이다. 평소의 소신은 완전히 접어두고 제가 돕는 후보가 당선한 뒤 닥칠지 모를 이익과 기회만 좇기 때문이다. 어지럼증에 덧붙여 사실 역겨워 토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투기라면 역시 그 또한 투기임에 분명하다. 자질(資質)과 소질(素質), 역량(力量)과 양식(良識)을 가늠하는 잣대는 또 어느새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출처: https://hanjoong.tistory.com/entry/한자-그물로-중국어-잡기-196-투기投機?category=662101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