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花好何妨徹骨貧

bindol 2021. 3. 10. 06:21

花好何妨徹骨貧

 

一枝蘸墨奉淸塵 花好何妨徹骨貧
想到薄氷殘雪候 定思林下水邊人
일지잠묵봉청진 화호하방철골빈
상도박빙잔설후 정사임하수변인


한 자루 붓을 적셔 고상한 풍채 그리니
꽃이 좋으니 뼈에 사무치는 가난이 무슨 상관이랴
얼음 녹아내리고 눈 스러지는 날씨에 생각이 이르니
숲 속 물가에 사는 사람을 그리워하네


- 18세기 말∼19세기 초 청나라 화가 나빙(羅聘)이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선물로 준 매화묵죽도(梅花墨竹圖)의 화제시.

​나빙은 박제가에게 매화묵죽도와 박제가의 초상화를 선물했다.

북학파 실학자였던 박제가는 전후 세 차례 베이징(北京)을 다녀왔다.


1778년 사은사 채제공(蔡濟恭)을 수행해 처음 베이징을 밟았다.

1790년에는 진하사(進賀使)를 수행해, 1801년에는 동지사(冬至使)를
수행해 각각 베이징을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100여 명의 중국 지식인들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다.
이조원(李調元)·반정균(潘庭筠) 등으로부터 새로운 학문을 배웠다.


또 나빙(羅聘)·기윤(紀昀) 등의 문인들과 시서화(詩書畵)를 주고받으며
수준 높은 문화교류의 장을 펼쳤다.

일본의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 2006.7.4 94세를 일기로 타계)는
이런 박제가를 '한류'(韓流)의 원조로 지목했다.

아키나오는 2005년 4월 일본 도쿄에서 발행되는 ≪도요헤이와(東洋平和)≫에
기고한 "배용준 아닌 박제가"라는 글에서 중국판 한류의 원조로 박제가를 꼽았다.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어 배우 배용준이
일본여성들을 매료시켰는데 이같은 일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중국 베이징에서도 일어났다."


아키나오는 "당시 박제가는 베이징의 최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윤기 흐르는 맑은 얼굴, 소나무와 같은 긴 눈썹'(丰神郎潤 尾如長松)이라 불렸다"
면서 박제가가 중국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고 썼다.

아키나오의 이 글은 추사연구회 학회지 ≪추사연구≫ 제2호에 우리말로 번역돼 국내에 소개됐다.

아키나오는 1926년 경성제대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와서 서울중학교 전신인 경성공립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고치(高知)고교를 거쳐 도쿄대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했으며 평생 교직에 몸담았다.

그의 부친 후지즈카 지카시(藤塚隣)는 고증학과 금석학의
대가로 열렬한 추사(秋史/김정희) 광(狂)이었다.

​생전에 서울과 베이징을 오가며 추사의 진적(眞迹)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거기에는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도 포함되어 있었다.

​<세한도>는 고미술품 소장가였던 소전(素筌) 손재형이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후지즈카로부터 넘겨받음으로써 광복직전 고국의 품에 안기게 된다.

후지즈카 지카시가 평생 수집한 고서와 서화류 2700여 점을 아들인
아키나오가 2006년 초 경기도 과천시(과천문화원)에 기증했다.
한국정부는 2006년 1월 후지즈카 아키나오 씨에게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했다.


- 蘸墨: 붓을 먹물에 담금.
- 淸塵: 고귀하신 분. 상대를 높여 부르는 표현.
- 丰神: 토실토실하고 아름다운 얼굴(丰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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