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해포에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해포에서
세상만사는 예로부터 뜻대로 안 되는 법
백발에는 전원에 가서 눕는 것이 제격이지.
산수에 묻혀 사는 그 넉넉함을 잘도 아니
조정에서 기억해 주지 않은들 뭐가 아쉬우랴.
베개 베고 누우면 해포의 파도소리 들려오고
발을 걷으면 오서산 산빛이 밀려든다.
동계거사가 이따금씩 찾아와서
술기운에 격한 말로 늘 나를 일으킨다.
蟹浦萬事從來意不如
(만사종래의불여)
白頭端合臥田廬
(백두단합와전려)
已諳丘壑生涯足
(이암구학생애족)
肯恨朝廷記憶疎
(긍한조정기억소)
蟹浦潮聲欹枕後
(해포조성의침후)
烏栖山色捲簾初
(오서산색권렴초)
東溪居士時相訪
(동계거사시상방)
得酒狂談每起予
(득주광담매기여)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鵝溪) 이산해(1539 ~1609)가 만년에 고향인 충청도 보령에서 지었다. 해포는 고향 바닷가 이름이다.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랐어도 뜻대로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분노와 아쉬움을 삭이기에 좋은 곳은 그래도 고향 바닷가다. 고향에 누우면 해포에서 들려오는 조수 물 오가는 소리와 오서산 산빛에 울퉁불퉁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보령의 명사로 동계거사(東溪居士)로 불린 아우(이산광·李山光)가 가끔씩 찾아와 술 몇 잔 마시고 술기운을 빌려 격한 말을 쏟아낸다. 그 말에 속을 뒤집어지는 때를 빼놓는다면 마음이 참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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