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눈 속에서 홀로 술을 마시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눈 속에서 홀로 술을 마시다
펄펄 내리는 눈을 마주했으니
어찌 술 생각이 나지 않으랴.
석 잔으로는 채워지지 않아서
마시다 보니 한 말까지 이르렀네.
雪裏獨酌
坐對紛紛雪(좌대분분설)
那能不飮酒(나능불음주)
三杯猶未足(삼배유미족)
行且到盈斗(행차도영두)
도운(陶雲) 이진망(李眞望·1672~ 1737)은 대제학과 형조판서 등 고관(高官)을 역임하고 영조의 사부(師父)가 된 명망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했지만 대인관계를 잘하기 위해 마시지 않았다. 홀로 마시는 술을 가장 즐겼다. 비가 내리면 한 잔 마시고, 매화가 피면 한 잔 마셨는데 술이 가장 간절한 것은 눈이 내리는 때였다. 그때가 되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천지변화에 촉발된 감동이 술잔을 잡게 하곤 했다.
어느 겨울 눈이 몹시 내린 날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다가 대취하였다. 눈이 저렇게 내리는데도 술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잔 두 잔 홀로 기울이다 보니 한 말을 비웠다. 주량(酒量)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설(大雪)은 말술로도 다 채워지지 않는 벅찬 흥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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