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느낌이 있어서

bindol 2021. 3. 14. 05:54

[가슴으로 읽는 한시] 느낌이 있어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느낌이 있어서

 

학은 길고 오리는 짧아도
모두가 새이고
오얏꽃은 희고 복사꽃은 붉어도
하나같이 꽃이지.
직책이 낮은 탓에
상관에게 욕을 자주 듣나니
갈매기 훨훨 나는 바닷가로
차라리 돌아갈까 보다.

 

有所感(유소감)

 

鶴長鳧短皆爲鳥
(학장부단개위조)
李白桃紅摠是花
(이백도홍총시화)
官賤頗遭官長罵
(관천파조관장매)
不如歸去白鷗波
(불여귀거백구파)

 

―김니(金柅·1540~1621)

조선 중기의 관료 유당(柳塘) 김니가 지은 시다. 관북 출신 시인들의 시선집인 '관북시선(關北詩選)'에 실려 있다. 황해도 관찰사까지 지냈으므로 고위직을 역임한 분이다. 그는 서울 태생이기는 하나 함경도에서 성장한 관북 사람이었다. 그 시대는 상대적으로 관서·관북 지역에 대한 차별이 적었던 때인데도 그는 차별을 많이 느끼고 불만을 시로 표현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고, 희고 붉은 차이가 있어도 그것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지 않는다. 차이는 사람을 갈라놓는 칼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를 꽃피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차별의 표적이 된 그는 욕만 실컷 얻어먹고 자연히 고향의 바닷가로 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세상의 변방으로 떠날 사람을 많이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