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소양정에서

bindol 2021. 3. 14. 05:52

[가슴으로 읽는 한시] 소양정에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소양정에서

 

한가한 사람은 본래 한가로워
멋진 풍경 있어도 잊고 살지만
바쁜 사람은 바쁘기에
강산의 멋을 제대로 사랑하지.
저 나루터에 솟아 있는
아름다운 누각을 보게나!
바쁜 사람 위해 서 있고
한가한 사람 위해 서 있지 않네.

 

 

昭陽亭戱題(소양정희제)

 

閑者自閑忘外境(한자자한망외경)
忙人方解愛江山(망인방해애강산)
看他畵閣津頭起(간타화각진두기)
正爲忙人不爲閑(정위망인불위한)

 

―박태보(朴泰輔·1654~1689)

 

 

숙종 때 인현왕후의 폐비를 반대하다가 죽은 정재(定齋) 박태보의 작품이다. 그는 강직한 선비로도 명성이 높았고, 시인으로도 출중했다. 시는 조금 난해하나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소양강을 따라 바삐 지나가다 소양정에 잠깐 올랐다. 강과 산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명승이다. 아무리 먼 길을 서둘러 가야 한다 해도 짬을 내지 않는다면 멋이 없는 사람이리라. 그런데 정자에 올라보니 아무도 없다. 한가한 사람이 많을 텐데 몹시 바쁜 그만이 올라와 멋진 풍광을 실컷 감상한다. 아! 알겠다. 한가하다고 해서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아니, 바쁘기 때문에 강산의 아름다움을 더 잘 즐기고, 더 소중히 생각할 수 있다. 풍경만 그렇겠는가? 인생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자연도 예술도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