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93> 사개치부와 복식부기; 파급력은? |

bindol 2021. 4. 17. 04:12

르네상스의 발상지는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다. 당시 많은 천재가 있었다.

대표 인물을 딱 한 명 꼽으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하지만 수학에서는 파치올리(1445~1510)다. 선정 근거는 후대에 미친 파급력이다. 파치올리는 고향 베니스 상인들이 쓰던 복식부기를 자신의 수학책 '산술, 기하, 비 및 비례 요약집'에 최초로 소개했다. 그는 수학자이면서 경영학의 시조다. 가계부나 금전출납부에서는 들어온 돈과 나간 돈을 기록한다. 작은 조직에서는 이렇게만 해도 된다. 그런데 상거래 규모가 커지면 단식부기인 금전출납부로 돈의 흐름을 정확히 기록하기 힘들다. 그래서 한쪽에 + -가 있으면, 다른 쪽에서도 그만큼의 - +를 기록했다. 한쪽 단식이 아니라 양쪽 복식으로 기록하니 복식부기다. 이렇게 하여 회계의 자기 검증이 이루어진다. 복식부기에 따른 대차대조표(Balance Sheet)는 왼쪽 자산과 오른쪽 자본+부채 양쪽 금액이 딱 맞다. 복식부기 덕분에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다.

우리도 복식부기가 있었다. 개성상인들이 쓰던 사개치부다. 파치올리의 복식부기보다 200여 년 앞선다지만 파급력이 크지 않았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200여 년 앞섰다는 우리 금속활자도 마찬가지다. 파급력이 없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성경을 인쇄하여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민주주의에, 파치올리의 복식부기는 자본주의에까지 파급력을 미쳤다. 우리가 효시인데 뭐라 따질 수 없는 이유다. 승자 위주의 역사를 뭐라 말할 수는 있어도.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