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가 BCE(Before Common Era) 146년에 멸하자 서양 수학사도 대가 끊기듯 침체 쇠퇴한다.
이후 약 오백 년간의 고대 로마시대와 약 천 년간의 중세 암흑시대를 거치며 수학도 1500년 동안 암흑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 기간에 해당하는 진→한→수→당→송→원나라 때 중국에서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산술 역사가 펼쳐진다. 측량, 천문, 역법, 상업, 과세, 군사 목적으로 개개의 수를 계산하는 실용적 산법 기술인 산술이 발전했다. 많은 산술(算術) 책이 나왔다. 통털어 산경(算經)이라 한다. 유교 불교 도교 경전처럼 산술 경전인 산경들이 많다. 대부분 제목에 산(算) 자가 들어간다. 주비산경, 산수서, 구장산술, 산망론, 손자산경, 오조산경, 해도산경, 장구건산경, 하후양산경, 오경산술, 집고산경, 양휘산법, 산학계몽 등. 도형 면적과 부피를 구하거나 원주율, 제곱근을 계산하고 고차방정식 해를 구하는 등 산수, 산술, 산법 차원에서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국 산학은 딱 거기까지였다. 명→청나라에서도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한계를 넘지 못하였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은 실용적 목적이라는 벽을 넘어 추상적 논리를 따지는 수의 세계에서 놀았다. 피타고라스는 계산 만이 아닌 증명하는 수학, 유클리드는 공리로부터 수학하는 방법, 디오판토스는 상징적 문자로 추론하는 대수학을 창안했다. 중국은 이천 년 동안 실용 산학에 머물다 근대 이후 더욱 추상화된 서양 수학을 받아들인다. 실용만 좇다가는 벽을 못 넘는다. 실용의 늪에 빠지거나 실용의 섬에 갇히고 만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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