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33> 고기와 선물: 나를 공양하는 생명

bindol 2021. 4. 18. 04:36

고기를 선물하는 일은 많지만 두 낱말은 별 관련없이 들린다. 그런데 뜻밖에도 똑같다.

코 아래 진상(進上)이 제일이라는 옛말도 있다. 입으로 드시는 선물을 하라는 뜻이다. 알고 보면 일리 있다. 현대인들에게도 코 밑의 입으로 먹는 갈비 등의 고기는 좋은 선물이다. 특히 원시인들에게 애써 잡은 동물의 사체인 고기를 조각내어 주는 것은 받는 사람 입장에서 최고로 귀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가령 살진 뒷다리 하나 받는다면 얼마나 뿌듯했을까? 그것이 바로 선물(膳物)이다.

선물은 착한(善) 물건이 아니라 고기(膳) 물건이다. 선(膳)의 부수로 쓰이는 육달월(肉→月)은 달(月)이 아니라 동물 몸의 일부를 뜻하니 선은 먹는 고기(生肉)다. 고기란 원시 고대인들이 동물을 잡을 때 동물로부터 나는 소리인 '꽥'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설이 그럴 듯하다. 사냥꾼이 동물을 때려잡아 죽일 때 꽥하는 소리를 내고 죽으니 죽은 동물은 꽥이→꾀기→괴기→고기로 발음이 변했다고 한다. 이와 다르게 고기의 어원을 필자 나름대로 유추하자면 살지고 기름진 고기를 뜻하는 한자인 고(膏)에 어조사 몸 기(己)가 붙어 고기(膏己)라 할 수도 있다. 고(膏)라는 한자 역시 몸의 일부를 뜻하는 육달월을 부수로 쓴다.

배고파 살기 위해 사냥한 고기가 아니라 이익을 더 많이 내기 위해 사육한 고기들로 인해 고기는 과거처럼 귀하지 않다. 고기는 사냥터에서 내가 애써 잡은 죽은 생명이 아니라 시장터에서 상인이 파는 상품일 뿐이다. 레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대량생산된 고기를 끊어야 엔트로피를 줄여 지구를 건강하게 유지한다고 했다. 그래도 인간이 풀만 먹을 수는 없다. 다만 내 산 생명을 위해 공양(供養)해준 죽은 생명에 관한 감사함은 적어도 느껴야 하지 않을까?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