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32> 알코올과 리쿼어: 억지로 뭘 할까?

bindol 2021. 4. 18. 04:37

둘 다 술인데 다르다. 하나는 술을 이루는 성분이고 하나는 술을 뜻하는 단어다.

술을 대표하는 일반명사는 liquor다. 알코올 성분을 함유한 액체(liquid) 음료(beverage)가 리쿼어(liquor)다. 발음이 비슷한 리큐어(liqueur)는 순수 리쿼어에 과일이나 약재를 넣어 색다른 맛을 낸 혼성주다. 모든 술에는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다. 아랍어로 al-kohl은 화장용 숯가루였는데, 그 가루가 술을 증류하는 데 이용되면서 1800년대 중반에 와서야 유럽에서 술의 의미로 정착됐다. 알코올은 수소, 탄소, 산소로 돼 있다. 마시면 죽는 메틸 알코올(methanol)과 마셔도 되는 에틸 알코올(ethanol)의 차이는 화학적 구조의 차이다. 과일에서 저절로 발효된 액체를 원숭이가 마시는 걸 보고 인간이 따라 마셨다는 설이 있다.

여하튼 인간이 술을 마신 역사는 꽤 오래됐다. 술의 신 박카스와 디오니소스에서 알 수 있듯 고대 그리스까지는 물론 훨씬 이전으로 올라간다. 동양에서는 8000여 년 전 황하문명까지 술의 역사가 올라간다. 의(醫)라는 한자는 술을 뜻하는 유(酉)를 부수로 쓰는 것으로 보아 술은 처음에 의학용으로 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마시면 기분 좋아지는 술이기에 술은 의학용 약물에서 가장 파급력 강한 기호음료로 바뀌었다. 관습적으로 허용된 마약인 셈이다.

술의 제조, 운반, 판매, 수출입을 금지한 1920년대 미 금주법은 10여 년 만에 자연 실패로 끝났다. 조직폭력 깡패의 어원인 갱(gang)들이 패(牌)거리치며 알 카포네 등의 마피아 조직만 커졌을 뿐이다. 1933년 취임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연방의 금주법을 폐지했다. 술을 억지로 못 먹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절제해야 잘 산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