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34> 할 리 없다, 할 수 있다, 할 법하다

bindol 2021. 4. 18. 04:35

세 문장에 들어간 리, 수, 법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가만히 생각하며 따질 만하다.

리가 들어간 낱말이 제법 많다. 조리, 의리, 총리, 지리, 천리, 생리, 심리, 물리, 관리, 윤리, 도리, 요리, 순리, 법리, 명리학, 성리학, 이과 등. 모두 리(理)라는 한자를 쓴다. 理란 구슬(玉) 안에 숨어 있는 고운 결에 맞추어 섬세하게 갈아내는 일이다. 정성껏 제대로 갈면 귀하디귀한 보석이 되지만 마구 엉터리로 갈면 그렇고 그런 잡돌이 된다. 할 리 없다고 할 때 혹시 이 理라는 한자를 쓰는 건 아닐까? 네가 그렇게 할 리(理) 없다는 말은 네가 그렇게 엉터리로 옥을 갈 리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된다.

할 수 있다는 말에서 수란 무엇일까? 원래 우리말이지만 수단, 수법, 수완 등의 낱말에서 쓰는 손 수(手)를 써도 될까? 그래도 될 듯싶다. 할 수 있다는 말은 할 수단이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물 수(水)를 쓰면 철학적으로 한층 더 깊은 말이 된다. 물은 세상의 기본이고 생명의 기원이다. 물이 있어야 세상이 돌아가고 생명이 태어난다. 노자 도덕경에서 물은 최고의 선이다(上善若水). 그래서 너는 할 수(水) 있다는 말은 너는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물이 있다는 뜻이다.

할 법하다에서 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물(水)이 흘러가는(去) 법(法)이라고 할 수 있다. 네가 그런 일을 할 법(法)도 하다란 말은 네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그리 행동할 법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된다.

우리말에서 자주 쓰이는 글자인 리(理), 수(水), 법(法)은 모두 순리다. 시냇물(川)이 위에 놓인 머리(頁)에서 아래로 흐르는 순(順)리에 거슬러 인위적으로 무리하면 리, 수, 법은 사라진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