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많이 마시면 많이 취한다. 취하면 어떤 말이 나올까? 진담일까? 망언일까?
홍콩 배우 성룡의 1979년 출세작은 취권이다. 취권이란 취한(醉) 주먹(拳)의 무술이다. 과연 취권이 가능할까? 취권의 본래 의도는 그것이 아닐 게다. 술 취한 척 일부러 흐리멍텅하게 행동, 상대가 날 얕잡아 보게 해 결정적일 때 한 방 먹이는 허허실실의 무술이다. 술에 많이 취하면 무술이고 뭐고 나올 수 없다. 제 몸 하나 잘 간수하면 용하다. 취권은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취(醉)라는 한자를 살피면 술(酉)을 끝장(卒)날 때까지 마신 상태다. 졸(卒)은 졸병의 뜻인데 졸병은 끝까지 싸우다 죽을 신세다. 술을 끝까지 마셔 취하면 몸은 흐트러지고 마음은 어지러워진다. 그 와중에 뇌의 좌우로 갈린 이성과 감성 밑의 본성이나 의식이 밑동에서 받치고 있던 무의식으로 드러난다. 취중진담이나 취중망언은 본성적 무의식의 발로다. 여기서 진담이냐, 망언이냐를 정확히 따질 수는 없다. 따지기도 싫고 따져서도 안된다. 그냥 술 취해서 한 말이려니 하면 편하다. 과학적으로 심층분석해서 따지려는 순간 머리는 아파진다.
원래 술이란 물과 불의 만남이다. 술은 발효에서 시작된다. 발효 중인 술은 불에 달구어진 듯 부글거린다. 물 안에 불의 속성이 존재한다. 발효주를 증류하려면 진짜 불로 달구어야 한다. 증류주는 물이지만 역시 불의 속성이 존재하니 불물이다. 이 불물은 불수(水)가 되어 합쳐져 술이 됐다는 설이 그럴듯하다. 그런 술을 마시면 몸 안에 상극인 불과 물이 들어가니 상극인 진담과 망언이 함께 나올 수 있다. 다만 그렇게 술을 끝장날 때까지 마셔대 취하지 말아야 하겠다. 말은 이렇게 점잖게 하는데 취하면 어쩌나? 인간은 완전할 수 없는 부족한 존재가 아닐까?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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