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술을 잘 마시는 정도를 넘어 너무나 많이 마시는 술꾼이거나 주당들이다.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노래에 '와인을 시켰더니 그런 스피릿이 1969년부터 없다'는 가사가 있다.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이다. 와인은 포도를 발효시킨 저도주지만 스피릿은 세상의 모든 발효주를 불에 끓여 증류시킨 고도주다. 즉 에틸알코올 농도가 높은 술이 스피릿이다. 물 성분을 걷어내 85도 이상까지 알코올 농도를 올리면 술의 정신(spirit)인 주정(酒精)이다. 인간도 여타 요소들을 최대한 걷어내면 인간의 정신인 스피릿이 남지 않을까? 저차원 감정(感情)을 가질 수 있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고도의 정신(精神)도 가졌기에. 술의 스피릿은 인간의 스피릿보다 세다. 술을 마구 퍼마시면 술고래가 된다. 물 마시듯 고래처럼 마셔서 술고래라는 설도 있고 퍼마시다를 뜻하는 일본말 구라우(くらう)에서 유래한 술구라이가 술고래로 되었다는 설도 있다. 술고래를 부산에서는 '초빼이'라 한다. 발효된 술은 시간이 지나면 초가 된다. 곤(困)드레 만(漫)드레 취해서 술이 초가 될 정도로 마셔댔으니 사람 몸은 식초가 담긴 병인 초병(醋甁), 즉 '초빼이'나 다름없다. 술을 망태기로 거르느라 늘 술에 찌들어 있는 고주망태 상태의 모주망태 인간에게 고도의 정신인 스피릿은 고사하고 자잘한 기억마저 블랙아웃된다. 위험하다.
시인 조지훈은 9급에서 9단까지 18단계의 주도를 말했다. 술에는 장사가 없다. 최상급 9단인 폐주(廢酒)는 술로 인해 저 세상으로 간 사람이니까. 1급인 학주(學酒)는 술의 진경을 배우면서 마시는 주졸(酒卒)인데, 그 정도면 즐거운 삶에 보탬이 되려나? 다만 딱 거기까지다. 급에서 단으로 올라가면 술의 스피릿은 사람의 스피릿을 갉아 먹는다. 나 자신부터 각성하자.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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