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26> 카페와 커피; 가장 변태적인 음료

bindol 2021. 4. 18. 04:41

카페(, cafe)는 원래 커피다. 할 말이 많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커피다.

일본인은 불쌍하게도 커피 발음이 안돼 고히(コヒ)라 하지만 카페에 해당하는 한자음을 따서 가배()라고도 쓴다. 우리에게 카페는 서양식 술집이다. 카페테리아에서는 식당의 뜻이고 인터넷에서는 이야기 공간이다. "키스보다 황홀하며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 예찬 시가 있을 정도로 커피는 무척이나 매혹적인 음료다. 카파(Kaffa) 지역에서 커피 열매를 먹은 염소가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는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원산지다. 커피는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를 거쳐 동로마 비잔틴제국을 무너뜨린 오스만제국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어 17세기에 커피하우스가 번창했다. 우리나라에는 19세기 말에 들어왔다. 1999년 스타벅스의 대침공 이후 일세를 풍미했던 다방은 쇠퇴하고 이제 스타벅스 부류의 커피점이 대세다. 여기서는 이태리어가 판친다. 스타벅스 창업자가 이태리에서 사업모델을 따왔기 때문. 핸드드립 커피나 더치 커피와 달리 기계로 빨리(express) 우려내는 에스프레소, 2차 대전 때 유럽에서 미군들이 물을 부어 마신 아메리카노, 우유를 타 마시는 카페라테 등 메뉴판에 적힌 모든 커피는 이태리 말이다. 비교적 비싸게 돈내고 손님이 줄서며 가져다 마시는 스타벅스류 커피점은 손님의 편익보다 점주의 이익에 충실하다.

커피 농사를 하는 지역에서 커피 향기조차 못 맡아본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커피는 마시지도 못하고 돈으로 바꾸는 환금작물일 뿐이다. 음료의 제왕이 된 검은 커피 한 잔에는 이 세상을 환금화시키는 싸늘함이 있다. 이미 중독돼 안 마실 수는 없고 다방의 르네상스나 오면 좋겠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