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을 정하는 두 방식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조일전쟁인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이름에 '秀'가 있다. 豊臣(도요토미)라는 성(姓)과 秀吉(히데요시)라는 이름(名)은 그의 오야붕(親分)이었던 오다 노부나가로부터 받았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그의 충직한 꼬붕(子分)으로 적의 머리를 베어오는데 그 어느 장수들보다 빼어난(秀)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 공을 평가하는 등급이 바로 수우양가(秀優良可)다. 수려함-우월함-양호함-가능함의 순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나라에서 美(아름다움)를 추가해 수우미양가로 정착되었다. 얼마든지 더 좋은 평가 방식이 있었을 텐데 아쉽다.
조선시대 때는 서당에서의 글공부나 과거시험을 순(純)-통(通)-약(略)-조(粗)-불(不)로 평가했다.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다-배움에 통함이 있다-대략 이해했다-거칠게 이해했다-이해하지 못했다의 순이다. 이러한 등급은 서양식인 ABCDF와 비슷하다. 대학에서 Excellent-Very good-Good-Poor에 해당하는 ABCD는 학점으로 인정되지만 very poor인 F(fail)는 낙제(不)다. 고등학교 성적이나 대입 수학능력 시험은 5등급의 평가를 더욱 세분화시켜 9등급으로 상대평가한다. 6등급 절대평가도 있다.
수우미양가는 사람 머리를 베어 죽이는 성과의 등급 순서로 하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가장 낮은 등급도 不이나 F로 포기하지 않고 가능하다(可)고 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특히 어린 학생들의 교육성과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그 가상(嘉尙)한 뜻을 수용할 만하다. 교육적으로 가장 좋은 평가는 등급별 절대평가나 상대평가를 넘어서 한 명 한 명에 관한 개성평가다. 다만 일률적으로 평가해야만 하는 우리 교육현실상 그럴 수 없어 맘이 편치 않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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