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낱말은 유사어같지만 전혀 차원이 다른 말이면서 반대말이 될 수도 있다.
하늘 天 땅 地 검을 玄 누를 黃으로 시작되는 천자문은 태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성경 창세기 1장 말씀은 천자문의 첫 문장과 그 표현이 엇비슷하다. 노자도덕경 1장도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의 모습을 아무 이름없음(無名)이라 했다. 그 모습이 현하니 오묘하다고 했다. 여기서 현(玄)이란 어떤 구체적 모양 없이 희미하게 가물거리는 검은 빛깔이다. 신화가 아닌 스토리텔링의 창시자 장자는 단언적인 노자의 문장을 쉽게 이야기로 풀었다.
태초에 혼돈(混沌)이 살았다. 혼돈은 사람 얼굴처럼 7개 구멍이 없었다. 그래서 북쪽과 남쪽 바다의 왕들이 서로 작정하여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7일 만에 쉬시지만, 장자에서 혼돈은 그만 7일 만에 죽고 말았다. 태초에 세상은 혼돈이었는데 여기에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이루고자 했다면 세상은 창조되지 않았을 거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상만물이 생기기 이전의 혼돈을 카오스라고 했다. 결국 동서양 공히 태초의 모습을 혼돈(chaos)이라고 여긴 것이다. 이처럼 혼돈은 엄청난 뜻의 큰 낱말이다. 이제 혼돈은 복잡계 과학의 키워드가 되었다. 누군가가 혼돈의 중심에서 혼돈의 상황을 정리하며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혼돈의 가장자리(The Edge of Chaos)에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질서가 자연스럽고 우연스럽게 창발된다는 것이다.
태초가 혼돈의 시대였다면 이후는 줄곧 혼미하고 혼동스러운 혼란의 시대다. 혼란(confusion) 중에서 가장 큰 혼란은 흑백이던 좌우든 이분법으로 나뉜 가장 단순한 혼란이다. 혼돈에는 가장자리가 있지만 혼란에는 서로의 집요한 대결점만 있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11> 놀이·노름·노래; 즐겁게 살려면? (0) | 2021.04.19 |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12> Economy & Ecology ; 무엇이 더 클까? (0) | 2021.04.18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14> 소녀 처녀 아줌마 할매 ; 소년 총각 아저씨 할배 (0) | 2021.04.18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15> 인과관계와 상관관계 ; 알 수 없는 것 (0) | 2021.04.18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16> 한참과 오래 ; 여유를 위한 (0) | 2021.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