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04> 가난, 빈곤, 궁핍 ; 그 이유는?

bindol 2021. 4. 19. 05:00

 

우리는 이런 모자란 낱말들보다 풍요, 부유, 여유와 같은 말들을 좋아한다.

가난은 순우리말 같지만 간난(艱難)에서 유래했다. 두 한자 모두 어렵다는 뜻이다. 가난은 주로 내가 사는 집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기에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한다. 가난(家難)이라 써도 될 듯하다. 우리말로 가난은 경제적으로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여 어렵다는 뜻이다. 빈곤(貧困)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재화(貝)를 나누고(分) 나무(木)가 사방으로 에워싸였으니() 꽉 막혀 힘들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베풀어 나누면 힘들기보다 오히려 기쁠 수 있으므로 이때는 빈곤이 아니라 빈희(貧喜)다.

궁핍에서 궁(窮)은 더 어찌 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인 궁색한 지경에 놓인 것이다. 핍(乏)은 있는 것이 다 떨어지고 없는 결핍의 상태에 놓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늘 가난하고 빈곤하며 궁핍한 삶에서 헤어나기 힘들고 어렵다. 인류 역사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하지만 지금의 가난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아프리카 난민의 비참한 가난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가 겪는 가난은 대개 정신적 가난이다. 그칠 줄 모르고 커져가는 물질욕망(物慾)을 멈출 수 없을 때 우리는 가난해진다. 재벌회장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다. 적당하면 내 입(口)이 먹는 것을 그쳐서(止) 족(足)함을 알 때(知足) 우리는 비로소 가난에서 벗어난다.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발적 가난'까지 실천하게 된다. 예수는 마음이 가난한(poor in spirit)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은 그들의 것이라 했다. 멋진 반어법이다. "잘났어 정말!"처럼 표현의 효과를 위해 실제와 반대되는 뜻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지갑이나 통장은 가난해도 마음이나 생각이 부유한 사람이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