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낱말은 우리와 관계없는 것같다. 우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니까….
야만이란 길들여지지 않은(野) 쌍스러운 오랑캐(蠻)란 뜻이다. 세상의 중심에 당당히 위치한다는 중화민족의 관점에서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은 모두 동서남북 변방에 놓인 오랑캐들이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우리 한족(韓族)도 만주의 여진족처럼 동이에 속한 오랑캐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진족이 오랑캐였다. 오랑캐란 말은 우리가 여진족의 한 부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오랑캐가 중원을 차지하여 청나라가 되자 오랑캐는 바뀌었다. 6·25 노래에 나오는 '무찌르자 오랑캐'는 중공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제 중국은 우리와 수교국이니 오랑캐가 아니게 되었다.
그리스·로마에서도 그들 아닌 족속들은 야만스럽고 미개한 바바리언이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자 바바리언은 바뀌었다. 근대에 들어서 바바리언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원주민이 되었다. 그들은 약탈 대상이었다. 노예로 팔리고 살육되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위인으로 알려진 콜럼버스는 그들에게 참혹한 저주의 기원이었다.
20세기 들어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밥 말리는 아프리카 흑인의 자존심을 노래하며 그들의 우상이 되었다.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남아메리카의 아마존을 탐험하며 쓴 '슬픈 열대'에서 서구가 만들어낸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허상을 까부숴버렸다. 동물기로 유명한 시튼은 '인디언 영혼의 노래'라는 책에서 북아메리카 원주민이야말로 인류역사상 가장 훌륭한 종족이라고 고백했다.
문명의 시대를 산다고 자부하는 현대인들이 미개한 종족이 될 날이 올지 모른다. 물질욕구에만 야만스럽게 사로잡혀 아직 열리지(開) 않은(未) 미개 상태에 계속 머무른다면….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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