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99> 윈윈과 상생 ; 무엇이 문제인가?

bindol 2021. 4. 19. 05:04

서로 좋게 지내자며 윈윈을 상생이라고 한다. 과연 가당키나 한 낱말일까?

원래 윈윈(win-win)은 아버지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던 1991년에 미국이 채택한 국방전략이었다. 1991년에 소비에트연방(USSR)이 해체되자 냉전 시대는 사라졌다. 미국의 적은 소련 만이 아니게 되었다. 이때 미국이 이라크와 북한 등 두 개의 적들과 전쟁을 벌일 경우 둘 다 이기기 위한 전쟁력 강화책이 윈윈이다. 그 뜻이 우리 한국인 입맛에 맞게 와전되었다. 만일 미국 사람에게 서로 잘 지내자며 윈윈이라는 낱말을 쓰면 어느 적들한테 윈윈하자는 것이냐며 의아해 할 것이다.

파이팅이라는 말도 마찬가지. 중국인들은 찌아유(加油), 일본인들은 간빠래(頑張れ), 미국인들은 고우훠잇(Go for it)이라 하는데 우리만 유독 파이팅이다. 미국 사람을 격려한다며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이라 했다가는 지금 자기랑 싸우자는 것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뜰 것이다. 사진 찍힐 때 두 손가락을 펴서 만드는 V 사인도 원래는 2차대전 때 영국수상 처칠이 독일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었다. 영국인이 사진 찍을 때 한국인이 빅토리 V자를 편다면 도대체 누구랑 싸워서 승리하려고 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결국 윈윈, 파이팅, 빅토리 V는 우리나라에서나 통용되는 코리안 랭기쥐다. 남의 나라를 쳐들어간 역사가 없는 순하고 선한 우리 백의민족이 어쩌다 그리 호전적이 되었을까? '이기는 습관'이라는 책 제목처럼 산다면 인간미 없는 흉측한 괴물인간이 된다. 우리 일상생활에 전략, 공략 등 전쟁터에서 쓰는 말들이 난무한다.

서로 이기는 상승(相勝)인 윈윈은 그럴듯한 말장난일뿐이다. 하지만 서로 욕심을 줄이며 조화를 이루면 얼마든지 서로 평화롭게 사는 상생(相生)이 가능하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